이번 달 1일, 서울 은평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응급의료센터 소아청소년과(17세 미만) 야간진료 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은평구의 유일한 소아 응급실이 야간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우려가 쏟아졌습니다.
야간 진료를 중단한 원인은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은평성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레지던트) 수급이 안 돼 소아응급실 야간 진료가 어려워졌다”며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최대한 빨리 야간 운영을 재개하기 위해 전담 인력을 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은평구만의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이 분석한 '올해 17개 시도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소아과 레지던트에 지원한 의사는 53명 뿐이었습니다.
전국 66개 병원에서 208명의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25%밖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2019년만 해도 80%였던 소아과 지원율이 급감했습니다.
대학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부천시정)의 '2023년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2021년 36%, 2022년 22%에 이어 더 낮아졌습니다.
대학병원 50곳 중 38곳(76%)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1명도 확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저조한 것은 소아 진료 특성 상 위험 부담이 크지만 진료비는 낮고, 저출산으로 미래가 어두운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아과는 의료계 15개 진료과 중 진료비가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지난 10년 간 유일하게 진료비가 감소한 과입니다. 최근 5년간 폐업한 동네 소아과도 662곳에 달합니다.
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과도하게 긴 시간 근무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공의특별법에 따르면 전공의의 근무 시간은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전공의 2명 중 1명(52%)은 주당 근무 시간이 80시간을 초과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전공의들의 소아과 기피로 인한 문제는 비수도권에서 수도권까지 곳곳에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도 지난해 말 소아청소년과 입원병동 운영을 1달여 간 중단한 바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수년 전부터 인력 부족으로 인한 소아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체감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조치를 마련하지 못하다가, 수도권의 의료체계마저 붕괴될 조짐이 관측되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습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정부 정책 잘못”이라며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도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전국에 34곳 운영 중인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곳까지 늘리고, 24시간 전화 상담을 해주는 '24시간 소아전문 상담센터' 시범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선 병원들의 시각은 비판적입니다. 당장 부족한 의사가 아니라 시설 늘리기에 초점을 두고 있어 "포인트를 잘못 짚었다"는 겁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당장 시급한 응급 의료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는 “정부 대책은 의료인을 언제 어떻게 뽑을 것인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면피용 계획일 뿐”이라며 “당장 고사 상태인데 연구 용역 사업을 하면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류 교수는 “의료 공백은 이미 시작되었고, 젊은 의사들이 원하는 보상과 인력 보충이 되지 않으면 5년 내에 이 공백은 완전히 고착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소아 진료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저출산 여파로 환아가 줄고 있지만 의료 수가가 10년 째 그대로이다 보니 폐업하는 동네 소아과가 늘고, 과도한 업무 부담 등으로 소아청소년과를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지난 2일 성명서를 내고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소아진료 인력을 확보하고, 매년 응급실 소아진료 현황을 조사해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학회는 또 "소아의료체계의 위기상황은 저출산·인구감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hj4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