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8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아버지 고(故) 강창근씨는 75년이 흘러 유해로나마 딸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신원 확인 보고회에서 올해 77살이 된 강씨의 딸 술생씨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준비해 온 편지를 읽어내렸습니다.
희생자 강창근씨는 1948년 8월 어머니 심부름을 하러 나갔다 행방불명됐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주정공장에 감금됐다 경찰서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들려 왔지만,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강술생씨는 "아버지는 18살에 결혼해 19살 때 행방불명됐다"며 "내가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평생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내가 죽기 전 생각지도 못하게 아버지 유해를 찾아 평화공원에 모실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영면에 든 희생자는 김칠규(사망 당시 34세)·강창근(사망 당시 20세)·김두옥(사망 당시 26세)씨 3명입니다.
희생자 김칠규씨는 제주시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 34살 때였던 1948년 12월30일 집을 나갔다가 토벌대에 체포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이후 그의 흔적은 수형인 명부에서 확인됐습니다. 현재 그는 1949년 6월28일 비행장에서 사형 집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희생자 김두옥씨는 토벌대에 의해 집이 모두 불에 타자 인근 야산에서 숨어지내던 중 1948년 12월쯤 대부분의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동생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왔지만 중산간에서 내려 왔다는 신고에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김씨의 아버지 역시 비행장에서 총살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현장에 달려가 봤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의 시신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들 유해는 모두 2008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견됐습니다.
유해 발굴 이후에
도와 재단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총 411구의 제주4·3 희생자 유해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총 141명입니다.
[김가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mke3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