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받는 과정서 업(up)감정 의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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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나홀로 아파트(소규모 아파트 단지)를 찾았습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피해자 A 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집이 임대인의 채무로 경매에 넘어간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A 씨가 이 집에 전세로 들어갈 때 1억 3천만 원 정도의 근저당권이 잡혀있었습니다.
"저희가 계약을 머뭇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임대인이 재력가고 건물 자체를 통으로 갖고 있고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여태껏 문제 없이 전세계약을 잘 맺어왔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전세계약을 맺었지만, A 씨는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A 씨도 이른바 '건축왕'이라 불리는 건축업자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이 된 겁니다.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고 있는 B 씨도 같은 말에 속아 집을 계약했습니다. 두 피해자 모두 높게 잡혀있던 근저당권 때문에 나중에 '보증사고(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가 나도 보증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험은 들지 못했습니다. 전세 대출 이자 갚기도 빠듯한데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도 문제라 B 씨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건 부동산 컨설팅 업체. 업체 관계자는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은행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전세대출을 받으면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만약에 임대인이 돈을 못 주더라도 허그에서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어요."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할 책임을 임대인에게서 허그로 넘기겠다는 제안. 부동산 컨설팅 업체는 '어떻게' 허그 안심전세대출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걸까요. 핵심은 은행 대출을 받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피해자 B 씨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B 씨가 지난 2021년 문제의 전세사기 집에 들어오면서 내야했던 전세 보증금은 8500만 원입니다. 지난달 말쯤,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B 씨를 찾아와 '2억 6천만 원 정도를 안심전세대출로 대출을 더 받아오면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억 8천 만원의 추가 대출을 받으라는 건데, 이때 B 씨가 살고 있는 집의 근저당권을 말소하는 조건이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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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제안 관계도 |
이 경우 나중에 임대인에게 세금 체납 등 문제가 생겨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경매 낙찰금을 B 씨가 대출을 받은 은행이 먼저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은행이 B 씨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이유입니다. B 씨가 받은 안심전세대출은 보증보험이 들어져 있어 보증사고가 나면 허그가 변제해주게 됩니다. B 씨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걱정을 덜게 되는 셈이죠.
B 씨에게 이 집의 가격이 2억 6천만 원 이상이란 감정평가서만 있으면 이 과정이 가능한데,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가 감정평가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자기들은 감정평가서를 3억 정도 받았으니 이 집의 전세를 한 2억 5천만 원, 2억 6천만 원으로 해주겠다고 했어요."
B 씨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받은 감정평가는 2억 4천만 원 정도입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가 주택 시세를 부풀려 전세 보증금을 높게 받는 '업(up)감정'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이런 수법은 B 씨의 사례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지난해 10월 인천 미추홀구의 다른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와 피해자들이 나눈 대화 녹취를 확보했습니다. 당시 업체 관계자는 피해자들에게 주택 가격을 높게 받아줄 것을 약속하며, 해당 시세를 평가하는 감정평가법인을 신뢰해도 된다고 안심시키기도 했습니다. "경매 넘어가시면 50%도 못 받아요. 주변 시세가 2억 7천까지 감정서까지 다 나와요. OO 법인이라고 네이버에 쳐도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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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가 보낸 문자내용 중 일부 / 전세사기 피해자 제공 |
또다른 피해자들에게 받은 부동산 컨설팅 업체와의 문자 기록입니다. 이번엔 대출 이자비용까지 모두 내줄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허그안심전세 대출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2년 뒤에는 지금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금 전체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보증금은 임대인이 아닌 보증보험이 책임진다고 써있습니다.
허그만 전세보증금을 책임져주면 세입자도, 임대인도, 부동산 컨설팅 업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요?
피해자들은 한순간에 잃게 된 전세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단 제안에 솔깃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컨설팅 업체 말을 따른다면 전세사기에 공모한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허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단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성원 변호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허그에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알고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대출을 받고 허그에 안심전세 대출 신청서를 제출한다면 기망행위(사기)에 대한 가담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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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도시보증공사(HUG) |
허그 관계자 역시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제안대로라면 "허그가 피해자"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매물에 대해 안심전세대출을 못 들게끔 할 수는 없냐는 질문에 허그 관계자는 "임대인이 문제 있는 사람이란 기록이 없었다면 감시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사례 대부분은 보증보험을 들 수 있는 안심전세대출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의 정보가 허그에 없었고 허그는 막을 수 없던 겁니다.
전세사기를 감시하는데 생긴 공백을 이같은 사기 수법이 파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피해자들은 법률 자문 등을 통해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제안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네들은 돈 하나도 안 들이고 임차인한테 대출을 받아서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머지 돈 갖고 제 보증금을 준다는 거잖아요." -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A 씨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자한테 또 사기를 치네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B 씨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전세사기 공모로 몰아갈 수 있었던 방법에 피해자들은 분노를 넘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임대인이 피해자에게 돌려줘야할 돈을 세금으로 해결하려 했던 만큼 전세사기 피해규모가 더 커질 수 있었던 상황이기도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올바른 지원책이 빨리 전달됐다면 피해자도, 국고도 안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취[재]중진담’에서는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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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