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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오늘(9일) 전북대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고창 함양 오 씨 문중의 고문서를 공개했습니다.
1789년 9월 3일 작성된 이 고문서는 조선시대 노비 매매를 중개한 거간꾼 오재삼(吳再三)이 오 씨 문중(門中·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의 대리인인 노비 운노미(雲老味)에게 전달한 일종의 약정 문서입니다.
조선 시대의 노비 매매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그리고 노비가 도망갔을 때 어떻게 조치 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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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비매매와 관련된 조선 시대 고문서. / 사진 = 전북대 제공 |
거간꾼 오재삼은 1784년 3월 11일 오 씨 문중의 노비 매매에 보증인으로 참여해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5년 뒤인 1789년 8월 25일 매매한 노비가 도망을 갔습니다.
이에 오재삼은 노비 운노미에게 "오는 10월 5일까지 곱덕을 붙잡아 오겠다. (노비 매매 과정에서) 신뢰를 저버릴 일을 했다면 관청에 고발이 돼 엄한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수기를 작성한 겁니다.
도망간 노비는 양인이었던 최곳대의 18살 셋째 딸 곱덕.
최곳대는 1783년 흉년이 들어 집안 전체가 굶어 죽을 형편에 놓이게 되자 셋째 딸 곱덕을 오 씨 문중에 싼 값에 매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상황이 담긴 문서를 보면 '흉년으로 수많은 식구가 오랫동안 부황이 들어 살길이 막막하니 굶주려 함께 죽는 것보다는 여식을 싼값으로 팔아서 생을 도모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삼녀 곱덕을 (오생원)의 집에 영영 방매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김 교수는 "문서를 살펴보면 곱덕은 흉년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운 형편인 집안 식구들을 위해 싼값에 노비로 팔려 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후 어떤 연유에서 인지 5년 만에 야반도주를 하고, 추노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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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덕과 관련된 고창 함양 오씨 문중 문서들. / 사진 = 전북대 제공 |
도주한 곱덕은 어떻게 됐을까요?
거간꾼 오재삼의 다짐은 결연했지만, 도주한 곱덕은 추노꾼의 손에 잡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전북대박물관이 소장 중인 오 씨 문중의 호적단자(집안 구성원과 노비 목록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곱덕이 1879년까지도 '도망 노비'로 기재돼 있습니다.
18살에 도주한 곱덕은 108세가 되는 해까지도 붙잡히지 않은 겁니다.
김 교수는 "언뜻 보면 실용적인 문서로 보이는 노비 매매 문서, 호적단자, 약정 문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구하면 조선 시대 생활상과 특정 인물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면서 "또 이런
이어 "곱덕의 이야기는 고문서에 찾을 수 있는 극히 일부 이야기"라며 "고문서에는 조선시대판 병역 비리, 집안 재산 싸움, 고단했던 과부의 삶 등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 자료가 숨겨져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