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철도공사 ”지금까지 민원 0…설문조사 거쳐 확대 시행 여부 검토”
서울교통공사는 대체로 유보적 입장 "타 사례 검토 먼저"
“자칫 ‘배려’ 아닌 ‘배제’ 야기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 필요”
임산부 배려석 도입 13년...'무용론' 가라앉을지 주목
[인기척은 MBN '인'턴 '기'자들이 '척'하니 알려드리는 체험형 기사입니다]
↑ 광주 지하철에 시범 설치된 임산부 배려 안내시스템 / 사진 = 연합뉴스 |
지난해 12월 광주철도공사는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을 시범 도입했습니다. 해당 안내 시스템은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면 “임산부를 위하여 자리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도록 설계됐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시스템인데, 일부 시민들이 자리에 앉았다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는 글이 온라인상에 올라오면서 일각에선 반발이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광주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이 임산부 배려 인식 확산 및 실천을 위한 시도일 수는 있으나 자칫 일차원적 ‘면박주기’에 그쳐 교통약자 대 비교통약자 간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산부 배려석을 지금처럼 단순히 ‘분홍색 시트’ 로만 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공사에 임산부 지하철 이용 불편 민원은 여전히 연 7000여 건 가까이 접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임산부 배려석 관련 캠페인 / 사진 = 연합뉴스 |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임신 당시 수도권에서 지하철을 주 2~3회 이용했었다는 A(30대)씨는 여전히 일부 시민들의 인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임산부 배려석의 활성화를 강조했습니다.
A씨는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임산부 배려석 논란에 관해 “아직도 배려 받지 못하는 임산부가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 같다”며 “한창 임신한 상태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 임산부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는 걸 세 배는 넘게 본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A 씨는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장치로 만든 것 같은데, 임산부가 앉았을 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배려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저런 소리에 꿈쩍이라도 할까 싶다”고 우려했습니다.
마찬가지 상황을 겪었던 B(30대)씨의 경우 광주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에 대해 "이것보다는 부산의 '핑크라이트'가 좀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 광주광역시도시철도공사 / 사진=연합뉴스 |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을 직접 시범 도입한 광주철도공사 내부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광주철도공사 측은 ”시스템 보완 작업을 거쳐 특이 민원 없이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며 ”이번 시스템 도입을 통해 임산부 배려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 갖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초기 안내 방송 문안은 다소 배려를 강제하는 느낌이 있어 ’고객님께서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로 방송 문안을 변경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오는 2월 시민 설문조사를 통하여 확대 시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며, 이밖에 임산부 배려석의 색상을 분홍색으로 교체하거나 바닥에 임산부 배려석 스티커를 추가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연간 수송 인원이 30억 명에 달하는(코로나19 이전 기준) 서울 지하철, 그 중에서도 서울교통공사는 조심스러움을 내비쳤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광주 지하철처럼) 센서 등 인위적인 장치를 도입하자는 민원과 임산부 배려석을 아예 폐지하자는 민원이 동시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타 기관의 운영 사례를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이 설치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임산부 배려석 존폐 입장이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교통공사 측은 “도입 당시 보건복지부와의 논의를 거쳐 운영을 확정한 사안으로 임산부 배려석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서울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 사진 = 김윤, 김지영 인턴기자 |
10년 넘게 제기되고 있는 '임산부 배려석 무용론'에 맞서 부산, 대전 등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된 부산 지하철의 ‘핑크 라이트’는 부산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도시철도 내 임산부 배려석 알리미로 발신기(비콘)를 소지한 임산부가 도시철도를 타면 임산부 배려석에 설치된 수신기가 깜빡이면서 음성 안내가 송출돼 초기 임산부도 쉽게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산교통공사는 해당 시스템에 대해 “지금까지 민원도 없었고, 조사 결과 임산부의 78%가 자리 배려를 받았다”며 “비언어적 편의가 제공되고 시민의식 고취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전교통공사 역시 최근 대전도시철도1호선 모든 열차에 임산부 배려석 알림시스템인 '위드베이비'를 설치하고, 불빛과 함께 안내 음성이 나오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긍정적이지만, 너무 단순하게 접근했다가는 자칫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함은 물론 시민과 교통 약자들 모두의 불편이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조금 더 세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광주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에 대해 "’000배려석‘ 자체가 ’배려‘가 아닌 ’배제‘가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임산부와 노인, 장애인 등의 좌석을 따로 만들다 보니 일반인들은 오히려 배려에 무뎌지고, 교통 약자는 한정된 좌석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권리로서 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 문화의 정착과 ‘양보하는 시민’ 문화를 조성하는 홍보·계몽이 필요할 것“이라며 ”차라리 임산부 배려석이 아닌 일반적인 교통약자 배려석을 확대·설치할 수도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윤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yanna1102@naver.com, 김지영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jiyoungkim47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