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70년 7월 2일, 22살이었던 A 씨는 육군으로 현역 입대했습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함께 위로 형과 누나,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던 5남매 중 셋째였죠.
그리고 입대한 다음날인 7월 3일,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A 씨가 사망했다는 겁니다. 가족들은 당시 군으로부터 "훈련 중 사망했다"고 들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딱 50년이 지난 2020년, A 씨의 부모 모두 사망한 뒤였지만 A 씨의 형제들이 나서 국가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습니다. 이후 조사 끝에 A 씨의 사망 경위가 확인됐는데요. 그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A 씨가 입대해 첫날밤을 보내고 일어난 둘째날 오전 10시, 입소자들은 병기수여식을 위해 연병장에 집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병기수여식은 오후로 연기됐고 입소자들은 다시 내무반으로 복귀했습니다.
A 씨도 내무반으로 복귀했는데 이 때 내무반장인 하사관은 A 씨에게 "빨리 침상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는 A 씨의 행동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내무반장은 A 씨를 다시 불러 "행동이 느리다"라며 배를 두 차례 걷어찼습니다. A 씨는 그자리에서 졸도했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결국 숨졌습니다. 사인은 흉부 전면 타박상에 의한 급격한 쇼크였습니다.
50년 만에 동생이자 형, 오빠가 군에서 가혹행위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은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국가의 불법으로 숨지게 한 점, 그리고 이를 가족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에 대해 배상을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였죠.
↑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
2021년부터 시작된 1심 재판에서 정부는 2가지 이유를 들며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 유족들이 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당시 군은 유족들에게 A 씨의 순직사실을 분명히 알렸다는 이유였습니다.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당시 법률에 근거합니다. 당시 국가배상법은 순직한 군인의 경우 별도의 보상 규정이 있는 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제2조 배상책임
① 공무원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였을 때는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다만, 군인이 순직으로 유족연금 등을 지급발 수 있을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당시 순직 군인을 별도로 보상하는 법으로 '군사원호보상법'이 있었습니다. 공무수행 중 사망한 군인의 유족은 '전몰군경 유족'으로 분류해 별도로연금과 보상급, 기타 수당을 지급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제5조 정의
③ 이 법에서 '전몰군경'은 다음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군인으로서 전투 또는 공무수행 중 사망한 자
제7조 연금 또는 보상금
전몰군경 유족에 대하여 따로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연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해당 법에 전몰군경 등록을 사망이 확인된 시점에서 5년 이내에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6조 원호대상자의 등록 등
② 다음에 해당하는 자는 이 법이 규정하는 원호를 받을 수 없다
1. 전몰군경 사망이 확인되거나 유족 수급요건이 성립한 날로부터 5년 내에 등록을 하지 아니한 때
정부의 입장은 A 씨가 군인이었던 만큼 유족들이 군사원호보상법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5년 이내에 등록을 하지 않아 보상금을 받지 못한 것이니 국가가 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당시 군이 "훈련 중 사망했다"고 알린 것 외에 A 씨의 순직 사실과 원호 대상 등록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애초에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등록을 할 수 있느냐는 거죠.
반면 정부는 순직 사실을 알렸다며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1) 보관 중인 A 씨 매(화)장 보고서 중 '시체처리사항' 란에 시신 인수일과 장소가 적혀 있고, 그 옆에 A 씨의 부친(현재 사망) 성명과 서명이 적혀 있음.
2) 또 당시 작성된 순직확인증을 보면 보관용은 남아있고 해당 확인증에 '유가족용'이라고 적힌 부분은 절취된 흔적이 있음.
3) 보관 중인 '전사망 확인증 발행 대장'에도 유가족 성명란에 A 씨 부친의 이름이 적혀 있음.
1심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부 측이 주장한 두 가지 이유, 배상청구 자격이 없다는 점과 국가는 순직 사실을 알렸다는 점을 모두 인정한 겁니다.
배상청구 자격을 두고 1심 법원은 당시 별도의 보상법이 존재했고 이를 신청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당시 보상법에서 보상의 우선순위는 A 씨와 형제들의 부모였던 만큼 부모가 신청하지 않은 보상금을 이제와서 형제들이 청구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순직 사실을 알렸는지에 대해서도 1심 법원은 정부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굳이 국가가 순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1심 법원은 매(화)장 보고서에 적힌 A 씨 부친의 서명 만으로 사망 경위가 유족들에게 정확히 통보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군이 절차대로 순직 처리를 했고, 확인증을 준 흔적이 남아 있는 만큼 굳이 유족들에게 숨길 이유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족들은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당시 법률상 국가의 폭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격이 없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재차 다퉈보려고 했죠.
2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22부(마용주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원심을 깨고 국가가 A 씨의 형제들에게 모두 1억 9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국가가 유족들에게 순직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겁니다.
2심 법원은 앞서 정부가 제시한 증거들의 신빙성을 하나하나 문제삼았습니다.
첫째로 매(화)장 보고서에 적힌 '순직'이라는 날인을 지적했습니다. 군이 당시 '순직'을 결정한 날짜는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된 7월 14일이었는데 그보다 앞서 작성된 보고서에 '순직'이라는 날인이 된 건 보고서의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해당 보고서에는 시신이 국립묘지에 안치됐다고 적혀있는데 실제로 A 씨가 안치된 곳은 다른 공동묘지라는 점도 들며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문제삼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법원은 보고서에 적힌 A 씨 부친의 이름과 서명이 자필인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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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기재된 부친의 서명이 자필로 기재됐다거나 국가가 인장을 날인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 지난 19일 2심 선고
나아가 보관된 순직확인증에 유가족용이 잘려 있고, 전사망 확인증 발행대장에 발행 사실이 기재돼 있다고 해서 정황상 유족들이 순직확인증을 받았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순직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을 리도, 국립묘지가 아닌 공동묘지에 안치할 이유도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심에서 유족들을 대리한 강석민 변호사는 "당시 규정상 순직 사실을 알았다면 사망신고 뒤 호적에도 순직이라는 점이 적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법원은 이 부분도 인정했습니다.
2심 법원은 결국 군이 내부적으로는 순직 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했더라도 외부적으로는 은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박정희 정부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특수성이 작용했을 거라는 이유입니다.
결국 군의 의도적 은폐로 유족들은 순직 사실은 물론 A 씨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 말미에 재판부는 국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 것이라며 정부를 질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판결로 A 씨의 형제들은 50년 만에 비로소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고 A 씨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2심인 만큼 정부가 상고하게 되면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A 씨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