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임시 귀국 후 미복귀…'강제노역 정황' 발견
↑ 사도광산 갱도에 전시된 광석 운반차 / 사진=연합뉴스 |
사도(佐渡)광산 '조선인 연초배급명부'(이하 연초명부) 3종 등 일련의 자료에서 조선인의 가혹한 노역 현장을 연상하게 하는 기록들이 눈에 띕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관한 한국의 지적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기록은 사도광산이 조선인의 의사에 반하는 노동 현장이었다는 점과 조선인에 대한 가해 행위를 빼놓고 일련의 역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줍니다.
'한일민족문제연구'에 실린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의 논문 '조선인 연초배급명부로 본 미쓰비시(三菱)광업 사도(佐渡)광산 조선인 강제동원'(이하 논문)에서는 연초배급명부를 분석해냄으로써 조선인의 강제노동 현장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 연초명부와 부속 문서 / 사진=연합뉴스 |
연초 명부는 사도광산 사측이 측이 광부들의 필수품 중 하나인 '담배'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인데, 여기에 조선인의 동향이 일부 기재됐습니다.
1945년 6월 20일 자 연초명부를 보면 같은 숙소에 머물던 11명 가운데 7명이 탈출했고 3명이 검거됐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노동자가 일터에 나오지 않는 것을 결근, 사직, 퇴사 등으로 분류해야 하지만 사도광산 측은 '도주'(逃走)라고 명시했습니다.
조선인 노무자는 애초부터 그만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 조선인 '도주' 기록한 1945년 6월 20일 자 문서 / 사진=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제공 |
일본 내무성 경보국이 작성한 공문서인 '특고월보'(特高月報)에는 조선인의 더 적극적인 저항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1942.4.29. 미쓰비시 사도광업소 소속 조선인 노무자 3명이 경관에 연
특고월보 자체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해당 문서에 담긴 사도광산의 조선인 동향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만큼, 향후 연구에 있어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선예랑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unyehr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