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간 벌어진 한 법정공방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전 기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최 의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법원은 명예훼손이 맞다며 최 의원이 이 전 기자에게 300만 원을 위자료로 주라고 선고하며 이 전 기자 손을 들어준 겁니다.
그렇다고 최 의원이 법정에서 완패한 건 아닙니다. 앞서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에서는 최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죠.
이른바 '채널A 사건'이 벌어진 뒤 2년 넘게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법정 공방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사진=연합뉴스) |
기억이 잘 안나는 독자들이 있을 거 같아 사건부터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지난 2020년 2월부터 이 전 기자는 이른바 '신라젠 주가조작 의혹'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루됐을 거라고 보고 당시 유 전 이사장에게 정치자금을 줬을 거로 추정한 인사였던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이 전 대표가 사기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만큼 이 전 기자는 다섯 차례 편지를 보내고, 이 전 대표의 대리인으로 나선 지 모 씨와 세 차례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리인 지 씨와의 만남 과정은 지 씨의 제보로 MBC가 취재를 했고, '검언유착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보도가 되면서 이슈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정도가 지난 4월 당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였던 최강욱 의원은 '편지와 녹취록상 이동재 기자 발언 요지'라는 제목의 SNS 게시글을 올립니다.
↑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대표님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주었다고 해라 그것으로 끝이다. 검찰에 고소할 사람은 우리가 미리 준비해뒀다" - 2020. 4. 3. 당시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SNS
이 전 기자가 보낸 편지는 강요미수 혐의로, 최 의원의 SNS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겨지면서 법정 공방은 시작됐습니다.
가장 먼저 판정승을 따낸 건 이 전 기자였습니다.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었죠.
2년 전인 지난 2021년 7월 당시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강요미수는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강요미수의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 - 형법 324조
여기서 말하는 협박이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이 말대로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 '제보를 하지 않으면 검찰 수사가 강해져 더 큰 벌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한 이 전 기자의 말이 협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전 기자의 편지가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대법원 판례 때문인데요.
쉽게 말해 고지자(이동재 전 기자)가 제3자(검찰)를 직접 지배하거나 영향을 미쳐서 제보를 안 하면 검찰 수사를 세게 들어가게 할 수 있다고 이 전 대표가 인식해야만 '강요'가 성립된 다는 건데 이 전 기자는 검찰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거죠. 이 전 기자가 알려준 건 수사가 세질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이를 '위와 같은 취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검찰 관계자를 통하여 피해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확장 해석일 뿐 아니라 서신의 문언적 의미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 2021. 7. 6. '강요미수 의혹' 사건 1심 판결문
이 전 기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이 전 기자를 명예훼손 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의원은 유죄가 됐을까요? 아닙니다, 최 의원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해 10월 최 의원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김태균 부장판사는 최 의원을 기소한 죄목인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 조항에서 볼 수 있듯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합니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하고, '거짓의 사실' 즉 허위사실을 드러내야 하는 거죠. 재판부는 최 의원의 게시글이 '허위사실'에는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앞서 봤듯 최 의원이 올린 글 내용이 실제 이 전 기자의 편지에는 없는 내용이라는 게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의원에게 '비방의 목적'은 없었다고 봤습니다. 이 역시 대법원 판례에 따른 이유입니다.
쉽게 말해 약간의 사적인 비방 의도가 껴 있었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면 최종적으로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고 본다는 겁니다. 이 전 기자가 기자라는 공인 신분이었고, 최 의원의 글 역시 취재라는 공적인 활동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있다, 그러므로 비방의 목적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명예훼손도 성립하지 않으니 무죄가 된다는 거죠.
두 사람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1라운드 성격의 형사재판에서는 사실상 무승부가 됐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민사재판의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국면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난달 15일에는 이 전 기자가 채널A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의 선고가 나왔습니다. 무죄가 됐으니 복직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이 전 기자측 기대와 달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봉기 부장판사)는 해고가 합당하다며 이 전 기자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의 죄는 아닐지라도 '취재윤리'를 위반한 건 맞다는 이유입니다.
재판부는 형법이라는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대신 이 전 기자가 두 가지 원칙을 어긴 건 맞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 또는 단체를 접촉할 때 필요한 예의를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개인을 위협하거나 괴롭혀서는 안된다. -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2조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사진=연합뉴스) |
이 전 기자의 취재 방식은 이에 부합하지 못했다면서 재판부는 강도높은 표현으로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원고가 취재 과정에서 제보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특정 검사와 사이의 대화 내용을 허위로 작출한 녹취록을 제시하는 행위는 도저히 정당한 취재방식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 2022. 12. 15. '해고무효소송' 1심 판결문
심지어 무죄판결을 내렸던 강요미수 사건 재판부 역시 취재윤리는 위반한 게 맞다고 지적했고. 최강욱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 역시 취재윤리 위반이 맞다는 점을 최 의원에게 유리한 점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전 기자는 취재윤리를 위반한 게 맞다, 그리고 최 의원은 명예훼손을 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전 기자가 명예훼손을 당할 위험을 자초한 것이라는 법원의 잇따른 판단이 나왔지만, 앞서 알려드린 것처럼 최 의원은 민사재판에서 이 전 기자에게 패소했습니다.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민법상 명예훼손'은 맞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형사처벌이 되는 명예훼손과 민법상 명예훼손이 뭐가 다른 걸까요? 민법상 명예훼손은 앞에서 언급한 '비방의 목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게 차이가 있습니다. 허위사실을 말하고 거기에 상대방을 비방하겠다는 의도까지 있어야만 처벌이 되는 것과 달리 민법상으로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만으로 위법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대신 형사법에는 없지만 민사에는 있는 면책 조항이 있습니다. 비록 허위사실일지라도 그 당시 진실이라 믿을 수 있었던 근거가 있다면,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있다면 위법성이 없는 걸로 인정해주는 겁니다. 반면, 형사법은 약간의 작은 차이 외에는 오로지 진실이어야만 위법성 면제 여부를 따져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송승우 부장판사)는 최 의원에게는 면책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최 의원이 비교적 정확한 자료들을 받았던 상황에서 이 전 기자의 편지지 등에 없는 허위사실을 쓴 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공익 목적을 인정해줬던 형사 재판부와 달리 이번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로에게 유리한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은 장외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명예훼손 무죄가 나왔을 당시 최 의원은 "불법적인 취재 그리고 검찰과 언론의 결탁 이런 것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민사에서는 명예훼손이 맞다는 판단이 나오자 이 전 기자측은 "명예훼손이 명백히 밝혀졌다, 그럼에도 최강욱 의원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가 없음은 물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적반하장 식 태도를 보이고 있어 유감"이라고 받아쳤습니다.
↑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재판마다 승패는 달랐더라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명백합니다. 이 전 기자의 취재는 분명히 취재윤리에 어긋났다는 것이고, 최 의원은 이 전 기
물론, 아직까지 1심 결과만 나온 만큼 각 재판별로 상급심에서는 또 다른 판단이 나올지 모릅니다. 당장 이번 달에는 이 전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이 나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