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법칙 "대형 사고 전에는 같은 원인 소형 사고 빈발"
"그들 탓 아닌 우리 탓"...피해자 비난 멈춰야
150명 넘는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핼로윈 축제의 광풍이 지나간 일요일 오전. 비상 근무로 회사 출근길에 앞서 사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태원 입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했습니다. 참사의 흔적이라면, 사고 현장 골목을 비추고 있는 많은 방송사의 카메라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나와 있는 취재기자들, 그리고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 더미 정도였습니다. 국내 방송은 물론, CNN을 비롯한 외신의 라이브 중계는 현장의 분위기를 더 긴박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역 골목. 참사를 알리기 위한 국내외 취재진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
방송 특보로만 봤던 사고 현장의 골목.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곳이긴 했지만, 이 곳에서 불과 12시간 전에 150여명 넘는 꽃다운 청년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폭은 3.2미터 정도로 좁았지만, 경사는 그렇게 큰 사고가 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영상으로 봤던 것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고, 그 사람들이 겹겹이 눌러 깔렸다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를 느꼈을 게 분명합니다.
밤새, 회사의 디지털뉴스를 챙기느라, 여러 기사를 확인해보고 특보를 챙기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대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 보험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Heinrich)는 7만 5,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합니다. 이 법칙은 ‘산업재해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에 실렸는데, 산업 안전 사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 : 29 : 300 법칙’이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산업재해 가운데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하기 전날에도, 이런 안전사고를 우려할 만한 사고가 있었다는 점에서 미리 사고 예방에 나서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어쩌면 전날 있었던 가벼운 사고가, 다음 날 일어난 대형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핼러윈이 큰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는 점, 지난 3년 가까이 코로나19로 숨죽여있던 대중의 열정이 주말을 맞아 핼러윈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점, 좁은 골목길에 사람이 몰려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었다는 점을 고려했더라면 관계 기관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 핼러윈 인파가 몰린 이태원 거리. |
8년 전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안전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키보드 워리어’들이 배설하듯 쏟아내는 "그런 곳에 간 사람들 잘못이다" "핼러윈
찬란해서 더 슬픈 2022년의 가을, 인생을 채 꽃 피워보기도 전에 세상과의 인연을 마무리하게 하게 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광재 디지털뉴스 부장 indianpa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