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청은 사정거리 최대 9km에 달하는 홍이포를 남한산성이 멀리 보이는 망월봉에 설치해놓고 쏘아댔습니다. 엄청난 폭음과 진동에 혼비백산한 인조는 닷새 만에 항복을 하지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청을 오랑캐라고 무시했다가 순식간에 '홍이포'에 당한 겁니다.
말 많고 탈 많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국산 전기자동차를 덮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월 현대차 아이오닉5의 미국 판매실적은 천 306대, 8월보다 14%, 7월보다 30% 이상 감소했고, 기아 EV6도 22%나 줄었습니다.
'외국 언론은 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한국이 가장 먼저 대응하고 있고 독일, 일본 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천 500달러 (약 1천만 원)을 지급한다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한국의 수출용 전기차에 치명적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SOS를 쳤지만 돌아온 답은 '한국 측의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다.'가 다였고, 해리스 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이와 관련해 우리가 들은 답은 '잘 챙겨보겠다.'뿐이었음에도, 그리고 우리 기업의 손해가 저렇게 눈에 보이는데도, '그래도 우리 대응이 제일 낫다.'라고 합니다.
혹, SK 삼성 현대가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니 '설마 한국에 불리하겐 안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미국의 이런 '네 거 내 거, 내 것도 내 거'식의 심보에 화가 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노련함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를 늘리고, '반도체 특별법'은 지지부진하며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려달라는 업계의 오랜 요구도 국회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야 하는 한국. 설마라는 방심과 안일함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방심은 곧 무능력인 세상이 됐거든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어찌 전기차뿐일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