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안중에 없는게 기업들의 거대노조다.
최근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등 국내 40개 기업에서 노사가 '고용세습'조항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올해 5~6월 조사한 100인이상 사업장 1057곳 중 40곳이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중 최소 25곳이 국내 최대 노동세력인 민주노총 소속이다.
금속노조 산하 노조가 15곳으로 가장 많았고 보건의료노조 산하가 5곳으로 뒤를 이었다.
이같은 노조의 고용세습은 오래된 병폐 중 하나다.
노동자의 권익 보장과 공정한 노사 관계를 외치는 노조가 일자리 세습에 앞장서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행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투쟁한다는 강성노조가 정작 자기 자녀들의 일자리를 위해 다른 청년들의 일자리마저 가로막고 있으니 기가 찰 따름이다.
이들 노조의 고용세습은 청년들의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공정성을 훼손하는 최대 적폐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졸청년 고용률은 OECD 37개국가 중 31위에 불과하다.
청년 대졸자의 비경제활동 인구 비율도 20.3%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다.
청년 체감실업률 또한 19.6%로 사실상 5명중 1명이 실업 상태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청년 1인 가구의 65.8%는 월세 임차 가구다.
이 중 46.1%는 월세가 40만원 이하일 만큼 형편이 열악하다.
이처럼 많은 청년들이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바늘구멍처럼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안간힘을 쏟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은 청년들의 희망과 미래를 짓밟는 약탈행위나 다름없다.
자녀 취업을 간절히 바라는 부모들의 염원을 무너뜨리는 횡포이기도 하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자유와 기회 등 기본가치는 평등하게 배분돼야 한다"며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면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마저 빼앗겨 한숨과 눈물을 쏟는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특권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청년들의 절규와 "힘없는 부모라서 미안하다"는 기성세대의 자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려면 '현대판 음서제'에 대해 철퇴를 가해야 한다.
정부도 지금처럼 "단체협약 개정은 노사 자율사항"이라며 손을 놓을게 아니라, 기회 균등이 보장될 수 있도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노조 또한 자신들의 위선적 행태에 대해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자신들의 기득권 세습으로 인해 청년과 부모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헤아려야 한다.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 고용세습의 악폐는 이쯤에서 끊어야 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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