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13년 편찬된 `반찬등속` 원본의 표지. 충북유형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제공 = 청주부엌] |
1913년 할아버지의 할머니가 쓰신 요리책이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쉽고 재미있게. 배추짠지, 무김치, 깍독이부터 갓데기, 와이김치 같은 생소한 이름까지 그 옛날 조상님들 밥상에 올랐던 김치들이 줄줄이 살아난다. 부제는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 방금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 떠놓고 보고싶은 책 '반찬등속(청주부엌 펴냄)'이 나왔다.
책은 1913년 편찬된 반찬등속을 재해석했다. 원본은 밀양 손 씨(1841~1909)가 쓴 고조리서다. 그는 진주 강 씨 집안에 시집 온 며느리였다. 밀양 손 씨는 조실부모한 어린 손자 강규형 씨를 앉혀놓고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것들을 기록한다. 강 씨는 그 기록을 모아 반찬등속을 편찬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4년 후였다. 책은 김치와 짠지는 물론 떡, 한과, 술까지 47종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 381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청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
↑ 강신혜 씨는 김치를 다룬 첫 책에 이어 `반찬등속`을 재해석한 시리즈를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은 이번에 출시한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 반찬등속`의 표지. [사진 제공 = 청주부엌] |
반찬등속에 실린 김치는 어떤 필사본 고조리서보다도 현재의 김치와 유사하다. 오이김치와 깍두기, 무김치는 지금 레시피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배추보다 무를 활용한 김치가 많고, 찹쌀풀이나 밀가루풀이 전혀 쓰이지 않은 점도 이채롭다. 반찬등속의 무대인 청주 상신동이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은 충북 최대 곡창지대임에도 당시 김치에는 조기가 다양하게 '변주'되어 들어간다. 책은 조기가 금강을 따라 상신까지 와서, 어떻게 밀양 손씨의 손맛에 요리됐는지, 이른바 '조기로드'를 탐구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추가루를 쓴 '빨간 김치'는 아니지만 풋고추와 말린 고추, 고춧잎까지 다양하게 김치에 활용했다는 사실도 짚어준다.
![]() |
↑ `반찬등속`의 저자 강신혜씨는 "우리민족의 DNA 안에 지금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을 것 같은 김치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변화를 멈추지 않고 진화해온 결과"라며 "앞으로도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김치의 생명력이고 강인함"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반찬등속 레시피대로 100년 전 `외이김치`를 재현한 음식... |
책에는 강 씨의 끈질긴 취재와 완벽주의, 남다른 편집감각이 고스란히 담겼다. 30년간 잡지를 만들어온 그는 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싱글즈, 쎄씨, 키키, 여성중앙 등을 만들며 패션잡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편집장 시절 '강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마침표와 쉼표 하나까지 완벽함을 추구하기로 유명했다. '다시 태어나도 잡지기자를 하고 싶다'던 그가 여유로운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긴다. "<반찬등속>에 관련된 무슨 일이든 하라"고.
30년간 치열하게 글 쓰고 사진 고르던 딸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에 실린 사진 하나, 문장 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그는 "지난 3년간 반찬등속의 단어 하나, 문구 하나에 집착하고 매달렸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반찬등속에 나오는 음식들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고 했다. 그 과정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덕분에 우리 옛 김치들이 손에 잡힐 듯 되살아났다. 강 씨는 이제 다음 책을 위해 보리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들고 조청을 달이고 한과를 튀기고 떡을 찌며 보내고 있다. '할머니 말씀대로' 떡 하고, 한과 만들고, 술 담그는 이야기가 줄줄이 나올 참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요리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입소문이 돌고 있다. 강 씨는 "책을 읽으면 고조할머니가 김치 담글 때 쓴 소금은 천일염이었을까 자염이었을까, 내륙인 청주까지 어떻게 소금이 운송되었을까, 왜 고추를 가루
[신찬옥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