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준강간으로 고소했지만 '동거했던 사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통지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21)는 전 남자친구 B씨(31)를 상대로 준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불법촬영만 기소했다.
지난해 1월 A씨는 B씨와 헤어졌지만 새 주거지를 구할 때까지 동거하기로 했다. 가정폭력을 저지르던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로 인해 A씨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하고 며칠 뒤 남자친구 B씨는 A씨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까지 출동하면서 관계는 파탄났다. 그럼에도 A씨는 다리가 부러진 상태인 데다 반려견까지 있어 B씨가 A씨에게 손을 대지 않는 조건으로 2주간 더 B씨 집에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B씨는 A씨가 몸살에 걸려 약에 취해 잠든 새벽 3시경 성관계를 하고 그 장면을 촬영했다. A씨는 카메라 촬영음을 듣고 깨 핸드폰을 빼앗아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발생 후 1년8개월 후 A씨는 검찰로부터 불기소이유서를 받았다. 불기소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A씨는 즉각 변호사를 통해 항고했다.
불기소이유서는 "부부관계 또는 연인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고 이을 때 성관계를 한다고 해 곧바로 준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준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피해자의 가정적 의사에 반해 간음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헤어지자고 한 이후에도 동거생활을 계속해온 점 △교제기간 동안 성관계를 자주했고 이별 이후 사건 발생 이전에도 한 점 △즉각 항의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서 A씨가 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B씨는 A씨의 의사에 반했다고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대형로펌 송무그룹에 있는 위종욱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미 결별한 사이였던 점, 성관계 직전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해 피해자의 신고로 가해자에 대한 경찰 조사까지 이뤄졌던 점,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고 가해자의 성기 삽입이 있던 당일 피해자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던 점 등을 고려해야 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정적 의사에 반해 간음을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취지의 검찰 판단은 준강간 죄와 관련해 피해자의 가정적 승낙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형사전문 채다은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는 "불기소 이유서대로라면 부부간 성범죄도 인정될 수 없다"며 "사건 이전의 상황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성범죄 특성상 진짜로 준강간이 성립되는지 여부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다"면서도 "이 불기소이유서를 보면 왜 준강간이 기소가 안됐는지 알기 어렵다. 적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떤 이유로 불기소됐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 법적 조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항고를 하려면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을 지적해야 하는데 지금의 불기소이유서로는 대책수립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편 피해자 측 대리인인 이언·김지원 법무법인(유한) 강남 변호사는 31페이지에 달하는 항고이유서를 지난달 22일 제출했다. 이들은 "남성과 어떤 관계에 있든 동거를 하는 여성은 남성이 자는 동안 간음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라는 그릇된 성인식을 검찰의 공식적인 의견으로 나타내는 것이어서 극히 위험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과거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면 앞으로도 잠든 사이 간음해도 좋다는 가정적 승낙이 있다는 것이어서 교제했던 사이에 대해 사실상 준강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유사한 사건에서 가해자가 처벌받은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재판부는 지난해 "잠든 피해자를 상대로 유사간음, 간음 및 추행행위를 했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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