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자산 매각 명령' 등 주심 사건 결정 못 내리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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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형 대법관 / 사진=연합뉴스 |
6년 임기를 마친 김재형(57·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2일 대법원을 떠났습니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 배상과 관련한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문제 등 주심을 맡았던 일부 사건의 판단은 결국 내리지 않고 후임 대법관들의 몫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미쓰비시 관련 결정을 못 하고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우리 사회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대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어느 한쪽에 가둬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관이 보수와 진보를 의식하게 되면 법이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도 아니다.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자 하지 않았다"며 "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고, 사안의 실체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며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대법관은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2016년 대법원에 온 김 대법관은 서울대에서 20년 넘게 재직한 교수 출신으로, 파산법과 도산법 등에 정통하고 여러 교과서를 쓴 민사법학계의 대표적인 권위자로 꼽혀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지명됐지만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반영하거나 노동자 등 약자의 편에 선 판결도 여럿 만들어 내 화제를 낳았습니다. 대법관 전원의 심리로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내는 전원합의체 제도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이 적절한지를 따진 사안에서는 시행령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고 본 다수 의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고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노동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별개 의견을 냈습니다.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도출해내기도 했습니다.
김 대법관의 후임자로는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가 지명된 상태지만,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끝내놓고
이 경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명령 등 김 대법관이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둔 330건(민사 200건·형사 86건·특별 44건)의 최종 판단도 계속 늦춰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서영수 기자 engmath@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