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사람이 세탁하자'고 제안하자 "남자직원들한테 '빨래하라'고 말할 수 있나?"
전북 남원의 한 새마을금고가 여직원에게 빨래와 상차림 등을 시키는 등 시대착오적인 지시를 해왔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23일 MBC 단독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입사한 A 씨(20대·여)는 출근 첫 날 '밥 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직원들의 점심을 위해 밥을 짓고 상을 차리는 법을 인수인계 받은 겁니다.
A 씨의 업무는 창구 수납입니다. 하지만 점심 밥 짓기가 본인의 주 업무 만큼이나 신경써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심지어 A 씨는 상사에게 매번 밥 상태를 검사 받고, 밥 상태를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식사 후 뒷정리는 물론 냉장고 관리까지 A 씨의 몫이었습니다.
해당 은행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녀 화장실에서 사용한 수건까지 집으로 가져가게 해서 빨래를 해오라고 지시한 겁니다.
2022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갑질 행태는 A 씨가 증거로 남겨놓은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11시 전에는 밥을 해야 돼. 시간 되면 아침에라도 미리 하고"
"밥이 왜 이렇게 질게 됐냐?"
"집에 세탁기 있지? 수건 가져가서 빨아 와"
참지 못한 A 씨는 결국 '수건은 쓴 사람이 세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여성 상사에게서 들려온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남자 직원들한테 '본인들이 쓴 거니까 본인이 세탁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 집에서 세탁하든시 손으로 빨면 되는 거지"
회식도 고역이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상사들은 늘 회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했고, 심지어 회사는 보건소에서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선임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며 알려준 건 회식 때 간부들에게 술을 잘 따르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A 씨는 지점장으로부터 폭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3일 업무 중 A 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지점장은 "나는 니가 X나게 싫다. 너 같은 걸 누가 좋아하냐"는 등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A 씨는 지난 6월 3일 새벽 스트레스로 쓰러졌습니다. 이 날은 회사에서 3박 4일 제주도로 워크숍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지점장에게 불참 사유를 직접 보고했지만, 이사장은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A 씨에게 사유서를 쓸 것을 지시했습니다.
녹취록을 들어 보면 이사장은 A 씨에게 "몸 관리를 못한 건 본인 탓이다. 직장에 애사심이 없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뱉었습니다.
또한 A 씨가 사유서에 지점장의 폭언 내용을 담았는데, 이에 대해 이사장은 "삭제하라"며 "잘못을 뉘우친다고 쓰고,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해라"라고 강요했습니다.
문제의 새마을금고를 찾아간 방송사 취재진에게 A 씨의 상사들이 한 말은 더 가관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본인한테 얼만큼 잘해주고 그런 이야기는 안 하던가요?" "고객들이 쓰는 수건이라서 어떻게 보면 '빨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라고 하는 등 이해 못 하겠다는 태
'왜 여성 직원들에게 밥 짓기를 시키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다른 여성 직원들도 했던 관행"이라고 답했습니다.
A 씨는 녹취 등 직장 내 괴롭힘 증거와 함께 지난 9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신고하고, 국민신문고에도 해당 내용의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