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과 감청을 합법화해 달라는 미국 국가안보국의 회유에 강직하게 버티던 공화당 소속 필 의원. 결국 그는 정보당국에 의해 은밀하게 살해당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의 통화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건 정보기관이나 수사당국의 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감청영장은 엄하게 제한돼 있죠.
그런데 손쉽게 녹음이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통화를 녹취해 정치적 폭로에 활용하기도 하고, 고소, 고발의 증거로 삼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도 나타났죠.
지난 3월 대통령 선거 때도 윤석열 후보 측에선 김건희 여사의 사적인 통화 내용 공개로 이재명 후보도 가족사와 사생활을 둘러싼 녹취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대선 논란의 한가운데 통화 녹취록이 자리한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하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동의 없는 녹음은 모두 불법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하자고요.
사실 누구나 자신의 의사에 반해 음성이 녹음되거나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음성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고, 미국 일부 주와 몇몇 해외 국가에서는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금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일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사의 갑질이나 성희롱 발언, 직장 동료들의 노골적인 왕따 등을 고소, 고발하는 증거확보가 어려워질 겁니다. 녹음한다 해도 불법이니 되레 피해자가 처벌을 받을 수 있겠죠.
정치권과 사회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의 취재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겁니다.
우리가 왜 약을 먹을까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화녹음의 부작용을 우려해 금지시켰다가 더 큰 병이 생기면 어쩌죠. 그 정도 대책은 준비하고 법개정을 얘기하는 거 맞겠죠.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