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씹으면서) 터졌다! 터졌다!'
자연인의 권유로 윤택 씨가 먹은 건 살아있는 굼벵이입니다. '일할 때는 굼벵이요. 먹을 때는 돼지다.'라는 속담처럼 예로부터 굼벵이는 동작이 굼뜬 느림의 상징이었죠.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
정을병의 소설 '육조지'의 한 대목입니다. 경찰은 구타, 검사는 잦은 소환, 판사는 재판 지연으로 국민을 힘들게 한다는 뜻이죠. 굼벵이처럼 굼뜬 재판이 경찰의 구타만큼 고통스럽다는 풍자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지금 경찰의 구타는 사라졌다지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별로 바뀐 게 없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조사 결과 응답자 89%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 경험이 있다고 답했거든요.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 변론기일이 정해져 판사를 만나기까지 6개월 넘게 걸린다는 응답은 25%, 소장 제출 후 1심 선고까지 1년이 넘는다는 답변은 86%나 됐습니다.
설마 법원이 '민사소송은 5개월 안에 처리한다.'라는 법을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걸까요.
변호사들에 따르면 재판 지체 중 의뢰인이 사망하거나, 양육비를 못 받거나, 전세보증금 반환을 못 받는 등 피해는 어마어마합니다.
이유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문화 확산과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에 따른 판사들의 업무 의욕 저하 등도 거론되지만, 기본적으로 과중한 업무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힙니다.
한국 판사 한 명이 연간 담당하는 사건은 464건으로 한국과 사법 시스템이 비슷한 독일의 5배, 일본의 3배 수준이거든요.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서 반드시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겠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5년 전 취임사에서 '오늘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개혁 상징'이라고 했었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습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 정의를 지연시키다니요.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지연된 정의, 속 탄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