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일가와 함께 유복한 삶…삼엄한 감시에 지쳐 탈북 결심해
- 석영환 한의사, 탈북 후 의사 국가시험 3년 만에 합격해
- 김일성 건강 비법…향기 요법, 동면 요법 등 자연요법
- 탈북 의사, 일반 의사로 구성된 ‘하나사랑협회’ 구성…어려운 탈북자 도와
방송보기 링크 : https:youtu.be/TeeH0Ps-WJc
■ 방송일시 :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 05:40 ~ 06:20)
■ 진 행 : 김형오 사회정책부장 / 정아영 아나운서
■ 출연자 : 석영환 한의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형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치의로 그리고 이곳 남한에서는 한의사로 이름을 알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 정아영: 바로 그 주인공과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탈북 의사 선생님, 석영환 원장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김형오: 안녕하세요?
◆ 석영환: 안녕하십니까?
◇ 김형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저희가 새삼 소개를 부탁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자기 소개를 좀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석영환: 북한의 한의사, 대한민국 한의사 석영환입니다. 저는 98년도 대한민국에 입국해가지고 한의사가 다시 됐죠.
◇ 김형오: 북한에서 한의사로 살았는데 그 면허 가지고는 우리 이쪽 남한에서는 그게 안 되나 보죠, 통일이?
◆ 석영환: 전혀 안 되죠. 대한민국 법은 또 의료법이 있으니까 의료법대로 가려면 대한민국이 의과대학, 한의대를 졸업하고 그 졸업증을 가진자가 국가고시를 봐야 자격을 주죠. 한의사 자격.
◇ 김형오: 똑같이 그러면 남한에서도 한의대를 들어가서 시험을 보고 이렇게 한의사 자격증을 따시고?
◆ 석영환: 그렇게 돼야 되는 게 원칙인데 제가 조금 에스코트?
◇ 김형오: 좀 이렇게 다른 길로?
◆ 석영환: 네, 약간 좀 다른 길로 간 게 있습니다.
◇ 김형오: 북한에서 한의사를 하셨기 때문에?
◆ 석영환: 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요즘에는 탈북자가 많이 와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탈북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탈북자들이 정착과 이분들의 지원 자체가, 법률적인 이런 부분이 체계화가 안 되어 있어요. 그중에서 의사들을 봤을 때 북한의 의사가 한국에 와서 의사 생활을 하려면 다시 대학교를 의과대학 입학해서 졸업하고 시험 보고 이렇게 하면 이건 조금 뭔가 문제가 있죠.
◇ 김형오: 엄청 어렵죠. 어렵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 석영환: 어려운 건 기본이고 전문 의사 생활을 많이 하시던 분이 여기 와서 다시 학생이 돼서 처음부터 공부한다는 건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렇지만 이 의사가 제대로 된 의사냐, 그다음에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정도로 능력 있고 책임성이, 의사로서 능력이 있냐 이런 것을 검증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런 거 다 걸쳐서 북한에서 전문 7년제 의과대학을 졸업한 게 인정이 될 때 그때 이분은 의과대학 졸업하고 상당한 능력도 있으니까 시험은 보게 하자. 그래서 북한의 학사는 인정해 주는 거예요.그걸 제가 첫 스타트로 만들어져서. 그다음에 국가고시 보는 거예요.
◇ 김형오: 의과대학, 그러니까 한의대를 나온 걸 인정을 받아서 이제 시험만 보신 거군요.
◆ 석영환: 네.
◇ 김형오: 그래도 시험 통과하려면 그래도 여기 시스템이나 여기서 배우는 과목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죠.
◆ 석영환: 많이 어렵죠. 이게 저도 1년에 한 번 시험보거든요, 국가고시. 3년 만에 합격했습니다.
◇ 김형오: 여기 와서 공부를 더하시고 3년을?
◆ 석영환: 2번 떨어지고. 네, 3수.
◇ 김형오: 저희가 듣기로는 김일성 주치의셨다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렇다 보면 사실 북한에서도 충분히 인정받는 의사 선생님이셨고 사시기에도 좀 편안하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이렇게 넘어오시게 되신 그런 계기가 있으신 거예요?
◆ 석영환: 저는 사실 북한에 있을 때도 아버지 자체도 경호실 장군이라 제가 어렸을 때부터 궁중생활을 했어요. 그러니까 김일성, 그때 당시 김정일의 정권하에 있으니까.
유년시절부터 같이 있다 보니까 궁중에서 같이 살았어요. 북한 같은 대단한 독재국가에서는 경호실은 굉장한 자부심? 아주 자랑스러워요.
◇ 김형오: 힘, 권력 이런 거.
◆ 석영환: 그러니까 아버지 집이지만 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짜 청와대 들어가는 것처럼 2중, 3중 맨날 있잖아요. 그런 감시와 수색과 이런 걸 하고 들어가고. 그러니까 우리 부모, 형제, 친척들은 집근처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거고.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 사는 정도면 쓰고 먹고살고 하는 데서는 뭐 북한에서는 걱정 없이.
◇ 김형오: 혜택을 누리셨죠.
◆ 석영환: 걱정 없이 살죠. 그런데 한국에 왜 왔냐. 저는 그때 당시도 대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어요. 나는 해외 나가서 정말 세상을 좀 한번 구경하면서 살고 싶다. 북한 땅에서는 아무리 잘났고 잘살고 보란 듯이 해도 있잖아요. 북한 땅을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보는 게 어려워요.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세상 구경을 해 보고 이런 꿈을 갖고 있는 찰나에 거기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지점의 어디냐? 북한 쪽에 리비아 같은데 중동국가들에 북한 의사들이 파견돼서 한 3~5년씩 의사하다가 오시는 팀이 있어요.
◇ 정아영: 교육을 받는 건가요? 아니면 의료활동 같은 걸 나가시는 건가요?
◆ 석영환: 봉사가 아니고 돈 벌러 가는 거죠. 돈 벌러. 바칠 것도 바치지만.
◇ 정아영: 외화벌이.
◆ 석영환: 자기들도 돈 벌어서 오지. 그래서 내가 여기서 있다가 북한군병원으로 있잖아요. 그래서 군대 들어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거기로 가겠습니다 하고 사실은 거기로 가려고 거기로 갔죠.
◇ 정아영: 이미 탈북 계획을 세워놓으신 거군요.
◆ 석영환: 탈북은 아니고 해외.
◇ 김형오: 해외로.
◆ 석영환: 나갈 계획을. 그러다가 거기서 우연치 않게 속도위반해가지고 대한민국으로 직항으로 딱.
◇ 김형오: 김일성 주치의로 계셨다고 하는데 굉장히 많은 에피소드들도 많을 것 같아요. 많겠지만 하나만 좀 소개를 해주시면.
◆ 석영환: 이게 김일성의 주치사라는 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건강을 관리하는 팀을 의사들로 꾸려요. 거기에는 뭐가 있냐 하면 지금 현재 김 위원장 김정은 위원장 같은 경우도 젊은 나이에 체격이 좋고 오래 못 살지 않나 이런 얘기도 하고 심장마비 얘기도 하고 체중이 과체중, 동맥경화. 문에 있지 않을까. 많이 나오죠. 이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김일성도 옛날에 보면 체격이 이렇고 이런 데 다 달고 있었잖아요, 목 뒤에 있는 거. 이게 사실 종양이거든요.다르게 얘기하면 암하고 비슷한 건데 칼을 못 대요. 잘라내면 되는데. 왜냐하면 이 부위가 굉장히 위험한 데예요.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이 목 뒤에는 여기 생명중추라는 게 있거든요.심장 뛰는 곳이 여기인데 여기에 혹이 있는데 그거 잘못 건드리면. 거길 손댈 의사가 없고 전문 의사라도 참 무서워요. 그래서 결국은 수술하지 말고 오래 사는 방법이 뭐냐? 산삼을 가지고 향기요법이라든가 동면요법이라든가 이런 걸 해가지고 죽을 때까지 암 때문에 죽은 건 아니고 종양은 그대로 놔두고 이렇게 산 그런 건강 관리법이 있죠.
◇ 정아영: 이제 탈북을 하신 지 언 한 25년 정도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북한에서 생활하셨던 것과 우리나라에서 생활하셨던 것 그 두 가지를 경험하면서 많은 차이점을 좀 느끼셨을 것 같아요. 여기 와서 또 어려움을 겪으셨던 것도 굉장히 많으셨을 것 같고. 좀 어떤 일들이 기억에 좀 남으세요?
◆ 석영환: 이게 처음에 왔을 때는 아무리 의사가 됐어도 친구가 있어, 친척이 있어, 뭐 돈이 있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재미없어요. 모든 건 풍년이야, 눈은. 다 멋있고 다 좋아 보이고. 물론 그때 당시도 밥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은 없지만 사람이 삶이 있잖아요, 여기에.
◇ 김형오: 그렇죠, 인간으로서의 어떤.
◆ 석영환: 나 참 자랑스럽구나, 앞으로도 희망에 부풀고 이런 건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1년, 2년, 3, 4년 이렇게 쌓이다 보니까 가면 갈수록 사람이 삶에 보람을 느껴요. 사람이 소생하고 이런 걸 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 그거랑 또 밖에 나가서도 알아보시는 분들 있으셔서.
◇ 김형오: 다니시기 힘드시죠?
◆ 석영환: 네. 그래가지고 깡패 머리를 한 사람도 있고.
◇ 김형오: 지금 워낙에 인기 많은 원장님이시다 보니까. 지금 북한에서도 BA.5 같은 오미크론 변이들이 창궐하면서 확진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얘기가 나오다가 또 많이 주춤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뭐 남한에서 퍼뜨렸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어요. 그런데 북한에서 코로나가 확산하면 막을 방법이 있나요? 그건 말씀하신 그런 민간 요법들이 효과가 없지 않나요?
◆ 석영환: 그러니까 병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던 병을 없애고 이렇게 할 만한 대단한 그런 방법은 저는 거의 없다고 봐요.
◇ 김형오: 지금 북한의 의료 수준으로는요?
◆ 석영환: 네. 결국은 코로나라는 병은 이 병의 원리가 간단하지 않습니까? 처음에 들어왔을 때 걸렸을 때는 특히 코로나. 그다음 2차적으로 기관지염인데 이런 건 항생제 계열이 있잖아요. 이런 약들이 많이 들어가야 되는데. 물론 한두 사람이 걸렸을 때는 약을 쓸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걸렸을 때는 그만한 약을 북한에서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대한민국에서 퍼뜨렸다 이런 얘기는 정치적인 하나의 표현 아닐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김형오: 북한에서 탈북하신 분들 가운데 잘 정착해서 또 성공하신 분들도 많이 있겠습니다만 대표적으로 우리 원장님도 그런 분이실 텐데 또 나 혼자 잘났다고 나 혼자 잘살 수는 없잖아요.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해야 하고 특히 탈북민들이 어렵게 사는 탈북민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돕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 석영환: 그럼요. 우리 탈북민들이 전반적으로 사실 어려워요. 어렵다는 게 하루 세끼 밥을 못 먹냐, 이런 얘기가 아니고 정서적으로 친구,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밥도 하루 세끼 잘 먹고 있어도 사람이 사는 낙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울해지는 경우들. 밖에 나와서 그렇다고 우리 국민들하고 같이 휩쓸려서 대화를 하고 놀았으면 좋겠는데, 일도 하고. 이게 정서적인 문화가 맞지를 않아가지고 우리 탈북자들이 초창기에 온 사람들이 대화를 이렇게 하다 보면 조금 공격적이에요, 말투라든가. 아직도 저도 그런 경향인데. 그런데 그게 일반사람들이 잘못보면 화나서 싸움을 하려고 굴지 않냐. 이건 단순한 얘기인데. 이런 것들이 반복이 되면 자기가 일하고 생활하는 부분에서 트러블도 많이 생겨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사랑협회라고 사단법인이 있습니다. 탈북민 의사, 한의사들그다음에 일반인도, 대한민국 의사들 같이 모여서 남북이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자.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같이 우리 봉사하면서 고생하면서 툭탁거리면서 정서, 문화도 말투도 다 이해를 하며 가서는 우리 북에 있는 사람들도 점점 재미있고 우리는 사람들을 같이 도와주는 이런 취지에서 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봉사를 하다 보니까 참 참여하시는 분들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도 오고.
◇ 김형오: 뜻깊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 정아영: 그러네요.
◆ 석영환: 좋습니다. 제일 재미있는 일이에요, 그게.
◇ 정아영: 그럼 이제 원장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사실지도 궁금해져요. 남한에 와서 이제 성공한 어떻게 보면 한의사가 되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알아보시기도 하고요. 앞으로 어떤 일들을 더 이 땅에서 이뤄가고 싶으세요?
◆ 석영환: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저는 영원한 탈북자예요. 석영환이는 탈북자, 탈북 한의사. 저는 이거 못 벗어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탈북자고.
그러니까 우리 많은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정착해서 의지가 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기둥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제몫은 못 되고 좀 노력은 좀 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큰 울타리가 돼서 간혹 이런 경우, 탈북 여성들이 어떻게 결혼을 했는데
당하고 산다. 그럴 때 우리가 옆에서 지켜준다든가 또 어디 가서 이 사업을 하고 뭐 당했다, 돈을 뭐 어쨌다 이런 것들. 그러면 어디 법 말고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을 같이 손잡고 어려울 때는 손잡고 잘나갈 때는 같이 또 손잡고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정착해서 한 일원이 될 수 있는 탈북자들이 되지 않을까.
◇ 김형오: 북한에서 유능한 한의사로 한국에서 마주한 현실이 녹록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구보다 이 탈북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기에 노력하는 모습이 좀 인상 깊었습니다.
◇ 정아영: 탈북민들의 마음의 기둥이 되싶다는 원장님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오늘 토요포커스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