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궁할 때 도와주지 못할망정 이를 틈 타 이익을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300여 년간 명문가 위상을 지켜온 경주 최부자댁 가훈 6개 중 하나입니다.
과거 최부자댁에선 지름 다섯 치 정도의 둥근 구멍이 뚫려있는 쌀통을 내놓고 누구나 쌀을 한 주먹씩 쥐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죠. 덕분에 '사방 100리 이내에선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또 다른 가훈도 제대로 지켜졌을 겁니다.
뛰어오르는 금리로 채무자들은 1,752조 7,000억 원의 가계부채를 짊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금융사들은 과연 비 오는 날 고객을 위해 우산을 펴주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정반대입니다. 시중은행들은 서민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법으로 보장된 '금리인하요구권'에도 소극적입니다.
대출자는 자산이 늘거나 승진 등으로 연봉이 인상돼 상환능력이 높아지면 금리를 내려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지만, 은행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금리를 낮추지 않고 있거든요.
지난해 접수된 금리인하 요구는 88만 2,047건, 하지만 고작 26.6%만 받아들여졌고, 수용률도 2018년 32.6%, 2019년 32.8%, 2020년 28.2% 등으로 계속 낮아지는 추셉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4대 은행 임원들은 지난 2년 5개월간 무려 1,083억 원의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예금금리는 찔끔, 대출 금리를 빛의 속도로 왕창 올리면서, 4대 은행의 올해 상반기 이자수익만 무려 15조 원, 작년 상반기보다 20% 넘게 챙긴 덕이었죠.
외환위기 당시 줄도산의 위기에 빠진 부실 은행에 국민은 혈세를 쏟아 부어 가까스로 회생시켜놓았건만, 결초보은이 아닌 배은망덕이 된 거죠.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조정해달라는 고객들의 요청도 외면하며 군림하는 은행. 이젠 금리인하요구권 처리를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듯 은행재량에만 맡기지 말고, 좀 더 강력히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해보는 건 어떨까요.
궤도를 이탈하는 탐욕의 무한 질주에는 어느 정도 통제도 뒤따라야 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홀대받는 금리인하요구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