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범인을 체포한 뒤 기가 막힌 사실이 속속 드러나게 됩니다.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인데, 우선 성폭행 등 중범죄를 숱하게 저지른 전과 11범 서 씨는 이 사건 발생 13일 전에 이미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한 가정에 침입해 여성을 성폭행했지만, 경찰은 이때 현장에 남은 DNA와 이미 확보된 범인의 DNA를 대조조차 하지 않습니다.
또 경찰이 '1차 범행 장소에서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는지'만 확인했더라도 2차 범행 전에 검거할 수 있었겠지만, 안 했죠.
경찰은 또 특수강도강간죄로 7년을 복역한 서 씨를 '절도죄로 6개월을 복역한 잡범'으로 잘못 입력해 출소 후 아예 방치하다시피 했고, 법무부 보호관찰소는 서 씨를 '재범 위험성이 높다'라고 해놓고도 '월 3회 대면접촉' 의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서씨가 범행 한 달 전 보호관찰관에게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하고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했지만, 보호관찰관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지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처럼 국가의 잘못이 한두 건이 아닌데도 법원은 헌법에 규정된 범죄피해자 구조 청구권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이유 없다'며 패소했으니까요.
어제 마침내, 대법원에서 '직무위반과 사망의 인과성이 인정된다'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건 발생 10년 만에 내려진 뒤늦은 판정입니다.
'못 보게 해야지요.'
아내를 잃고 10년간 피눈물을 흘린 피해자의 남편은 어느덧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또 상처를 입을까 대법원판결 소식조차 전하지 못했습니다.
불가침 인권과 생명권은 말로만 외쳐선 지켜지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의 유기적 협력 체제를 강화해 예측가능한 비극을 막는 등 실제적인 고민과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국민은 그런 걸 바랍니다. 그게 바로 위정자들의 존재 이유니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범죄 방치하는 국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