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해자 80% '경찰에 도움 요청 안한다'…2차가해·사건축소 등에 불신 커져
↑ 스토킹 이미지 / 사진=연합뉴스 |
스토킹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신고 여성에게 "호감 표시 아니냐"는 2차 가해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며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8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에 거주 중인 A씨는 자신을 쫓아 오피스텔 내부까지 뛰어들어와 말을 거는 남성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A씨에 따르면 이 남성은 그 전날에도 오피스텔 근처 거리에서 기다리다가 말을 걸었으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당 오피스텔의 CCTV를 보면 한 남성이 A씨를 따라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말을 걸다가 돌아간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에게 건넨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해당 경찰은 "호감 가지려고 그랬던 거 아니냐"면서 스토킹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며 옹호했고, 옆에 있던 경비원까지 나서 항의했음에도 계속해서 "혹시 그런 사람일 수도 있지 않냐. 나는 그 사람을 못 봤으니 하는 말"이라며 스토킹 혐의자를 두둔했습니다.
피해자인 A씨는 "그래도 스토커인데 '호감'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내일 또 마주치면 믿고 전화할 곳은 경찰밖에 없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연락해야 하냐"며 불안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해당 사실이 알려지며 비난이 거세지자, 경찰은 해당 경찰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다며 현재 가해 남성을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전했으나, 비난 여론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에게 경찰이 미흡하게 대처해 논란이 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4월에는 춘천에 거주 중인 한 30대 여성이 경찰에 "스토킹 가해자인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한 영상을 지인들에게 퍼뜨렸다. SNS에 올리기 전에 도와달라"며 신고를 접수했음에도, 경찰이 막말하며 늦장 대응해 결국 불법 촬영물이 SNS에 올라가는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반복해서 '내일 방문하라'는 성의없는 답변으로 일관하던 해당 경찰은 불안함을 느낀 피해자가 보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요청하자 "내가 (성폭행 영상) 유포했냐"며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전에 이미 여러 차례 스토킹 신고를 호소해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지급 등 보호 조치를 받는 중이었던 이 여성은 해당 경찰관으로 인해 불면증이 심해져 병원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춘천경찰서 측은 체포영장 발급 후 3일만에 가해자를 체포해 절차에 따라 처벌했다며 입장을 표명했지만, 해당 경찰관의 대처에 대한 공분은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 경찰관 이미지 / 연합뉴스 |
지난해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연구팀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 256명 중 80.5%에 해당하는 206명은 '스토킹 피해를 입고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경찰에 신고를 접수하지 않은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해줄 것 같지 않아서'(22.3%), ‘경찰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서’(15.2%), '과거에 문의·신고했을 때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5.1%) 등을 꼽았습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답한 이들 역시 경찰에 대한 만족도와 신뢰도는 저조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힌 약 20%의 응답자들 중 신고 이후 만족 정도를 묻는 질문에 '만족한다'고 답한 이들은 5.5%로,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22.7%의 약 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후자라고 답한 이들이 경찰에 불만족한 이유로는 '2차 피해를 가했다', '가해자 말만 믿고 사건을 가볍게 취급했다' 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스토킹의 개념과 특성, 범죄 구성요건별 해석 및 사례 적용 등을 포함한 '스토킹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 보호 조치에 미비한 사례들이 다수 접수되고 있어 '매뉴얼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매뉴얼이 있는데도 저런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권지율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ldbf99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