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름다운 인연을 쌓았습니다.
1997년 법정 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개원법회엔 김 추기경이 참석해 거리낌 없이 절을 했고, 법정 스님은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하고 길상사에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 보살상을 모셨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인연도 있습니다. 암행어사였던 다산 정약용이 비리를 밝혀 서용보는 경기도 관찰사직에서 쫓겨나는데, 기사회생한 그가 앙갚음을 한 탓에 다산은 무려 18년간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악연 덕에 다산은 500권이 넘는 책을 썼으니, 세상사 인연은 참 역설적이기도 하지요.
엊그제 문재인 정부 '산업부 블랙리스트' 와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범죄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 만큼 수사의 칼날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향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과거와 등장인물만 달라졌을 뿐 세상은 돌고 돈다는 '평행이론(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 전 장관이 받는 혐의는 국정농단 수사와 관련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우병우, 조윤선 전 청와대 수석들에게 적용됐던 바로 그 직권남용 혐의이니까요.
국정철학이 다른 전 정부 인사들과 일을 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같은 상황을 되풀이할 수도 없게 된 새 정부. 그러다보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후안무치·자리 욕심'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다람쥐 쳇바퀴도는 모습에 국민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많은 법을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밀어붙이는 국회가 왜 이와 관련된 법안은 그대로 두고 있는 걸까요.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 실세들이 만든 '기요틴'이라는 처형 도구는 훗날 세상이 바뀌자 거꾸로 혁명 실세들을 처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블랙리스트 공방' 이젠 끝낼 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