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이 2년 전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씨(사망당시 47세)가 월북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국방부도 전임 정부의 월북 시도 단정은 잘못됐다면서 사과했다. 이로써 도박 빚에 내몰린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문재인 정부의 2년 전 발표는 뒤집어졌다. 고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해온 유족은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며 환영했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은 1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조사와 국제사법공조 등 종합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이씨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1년 6개월의 수사기간 동안 마음의 아픔을 감내했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도 브리핑에 참석해 유족들에게 재차 애도를 표시하며 "국방부가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 과장은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면서도 "(사건 발생 이후) 국방부가 진행한 기자단 대상 질의응답에서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이씨를 총격 살해한 북한군에 대한 수사도 중단했다고 밝혔다. 박 서장은 "피해자는 2020년 9월 북한군의 총탄 사격을 당해 사망한 것으로 인정된다"면서도 "피의자가 북한 군인이라는 사실 외 이름과 소속 등 인적 사항이 특정되지 않았고, 남북 분단 상황으로 북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어 수사중지를 했다"고 밝혔다. 외부위원 중심의 수사심의위원회 의견 등을 종합해 내린 결정이라고도 했다.
대신 윤석열 정부와 해경은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소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이씨의 자신 월북 시도를 단정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은 잘못됐다"면서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국가안보실은 "이번 항소 취하 결정이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피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하였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항소를 취하하더라도 관련 내용이 이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되어 이전 정부 국가안보실에서 관리하던 해당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진실규명을 포함해 유가족 및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유족이자 소송 당사자인 고인의 형과 통화해 국가안보실의 항소 취하 결정을 비롯해 관련 부처 검토 내용을 설명했다. 국가안보실은 "앞으로도 유가족이 바라는 고인의 명예 회복과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해온 고인의 형 이래진 씨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고위 당국자로부터 직접 상황 설명을 듣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지금부터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국방부, 해수부, 해경 등으로부터 보고받고 지시했던 자료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공개되지 못하는 점은 대통령실과 유족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피해자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됐다가 북한 해역으로 표류했고, 하루 뒤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해경의 자진 월북 발표에 반발한 유족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해경청, 국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법원은 북측의 실종자 해상 발견 경위와 군사분계선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에 관한 정보를 유족이 열람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 해경이 작성한 초동 수사 자료와 고인 동료들의 진술 조서도 공개하도록 했다.
[지홍구 기자 / 김대기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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