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서 이마를 찧어가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내보내는 모스 부호는 우리 사회 하류층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구호 요청을 상징합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집 전등이 절박한 깜박임을 보이며 어둠을 깨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라고 해야 할까요.
2020년 충남의 한 원룸에서 중학생 A군이 극단적 시도를 했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자 살고 있던 A군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자 집 안에서 장기간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회적·정서적 관계의 고리가 끊어진 상황이었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청소년은 9천297명, 하지만 지난해는 1만 32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상당수가 취약계층일 거로 추정하는데 증상이 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거나, 가벼운 증상인 아이들까지 감안하면 실제 우울증을 겪는 어린이는 훨씬 많겠죠.
코로나 전후로 계층 간 학력 격차도 커졌습니다. 주관적 학업성취도에서 빈곤가구 아동은 4.8로 비(非)빈곤 가구 아동의 80%밖엔 되지 않았죠.
원인은 '코로나에 따른 온라인 수업'이 꼽힙니다. 취약 계층 아동 10명 중 4명은 개인용 디지털 학습기기조차 없거든요. 초중고교의 예산이 남아돈다면서, 학습기기가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왜 나오는 걸까요.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이자 인권운동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종종 칼럼과 라디오 방송에서 빈곤층 아이들을 향해 '나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습니다.
백악관으로 날아든 수십만 통의 편지에는 대공황기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차별이 그대로 담겨있었다는데, 엘리너 여사는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라며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이들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도와달라는 모스 부호에 적극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빈곤층 아이들의 '코로나 충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