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만 원을 넘지 않는 소액사건은 통상 30분가량 짧게 진행되는 이른바 소액 법정에서 별도로 판결을 내리는데, 패소하고도 96%는 항소를 포기한다고 합니다.
소액사건은 판결문이 강제가 아니다보니 아예 판결문이 없거나 있어도 달랑 한 줄, '패소'라고만 돼 있어 소송에서 진 이유를 모르니 당연히 항소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길기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2년 전 가게를 접게 된 이정화 씨는 당시 건물주에게 소액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건물에 흠집을 냈다며 보증금에서 3백만 원 정도를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자신이 하지 않았단 증거 등을 준비하며 소송에 전념했지만, 2년 뒤 받은 판결문은 단 1장이었습니다.
원고 패소, 이유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 인터뷰 : 이정화 / 소액사건 원고
- "내가 서류 준비를 잘못했을까? 그쪽(상대방)에서 내준 서류가 더 타당성이 있었을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상상을 하라는 거잖아요. (앞으로)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처럼 이유가 없거나 간단한 소액사건 판결문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현행법상 소액사건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신속한 재판을 하자는 취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진 이유를 모르니 향후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 스탠딩 : 길기범 / 기자
- "소액사건의 경우 변호사 없이 홀로 소송하는 경우가 80%에 달했는데요. 최근 5년 동안 소액사건 항소율은 4%대로 다른 민사사건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 인터뷰 : 이형주 / 변호사
- "(소액이라) 변호사 선임비용이 부담되니까 당사자들이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을 잘 모르는 일반 당사자들로서는 항소심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
이처럼 깜깜이 판결이 나오는 건, 법원 인력대비 소액사건 건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 소액사건 전담 판사는 1년에 약 4천 건 이상을 담당하는데, 1명의 법관이 한 사건에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30분에 불과했습니다.
▶ 인터뷰 : 김숙희 / 변호사·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
- "(소액사건이) 전체 재판의 70%가 넘는데, 대부분 판결이유가 없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이에 법원은 소액사건 전담 법관을 정원 외로 선발하거나, 체크식 판결문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체크식 판결문은 사건을 항목별로 분류하고, 필요 서류를 표준화해 법관의 업무 과중을 막는 대신 판결이유도 명시하게 만드는 겁니다.
다만, 판사 부족이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MBN 뉴스 길기범입니다. [road@mbn.co.kr]
영상취재 : 김영진 기자
영상편집 : 양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