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을 죽인 철천지원수 아킬레스에게 홀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춘 후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감동한 청년 아킬레스는 '나의 왕보다 훨씬 존경스럽소.'라며 선선히 시신을 돌려줍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도 진영과 나이를 넘어 서로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통 큰 행동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요즘 국민의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이준석 당 대표와 5선 정진석 의원의 거친 감정싸움을 보면,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느끼곤 있는지, 과연 집권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마저 듭니다.
진흙탕 싸움의 단초는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을 '자기 정치'로 공천개혁에 나설 혁신위원회를 '이준석 혁신위'로 비판한 정 의원이 제공했지만, 이후 두 사람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격한 표현을 동원하며 막장 설전을 이어갑니다.
야당 역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당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패하자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격분한 이 의원 강성 지지층들은 문자 폭탄을 보냈고, 홍 의원은 '배후가 있는 것 같다.'라며 고충을 토로했죠.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자신보다 26살이나 어린 기대승과 인간의 도덕성과 감정, 양심 등을 주제로 무려 8년 이상 치열하게 토론하며 100여 통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서로 깍듯이 존중하면서도 학문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으니 후세에 '아름다운 논쟁'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독설과 조롱, 키보드 배틀, 일명 키배라고 불리죠. 이런 수준의 이전투구를 벌일 때가 아닙니다. 무섭게 치솟는 금리와 물가 등으로 아우성치는 국민이 보이지 않나요?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다음 선장은 누구냐를 놓고 싸우다니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정치권 '갈등 조장'할 때인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