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외경 /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
명의신탁약정을 맺고 타인의 명의를 빌려 토지 등기를 한 사람은 설령 실소유주라 할지라도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숨진 A씨의 유가족이 B씨 등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습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부친이 1955년 취득한 논 6천50㎡(약 1천830평)를 1978년쯤 물려받았습니다.
A씨는 땅을 상속받은 뒤에도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1997년 한국농어촌공사에 땅을 팔면서 농어촌공사 앞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점에 A씨는 B씨와 명의신탁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A씨가 B씨의 명의로 농어촌공사로부터 이 땅을 사고, 다시 B씨 명의로 농어촌공사 대출을 받아 매매 대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농어촌공사는 두 사람 사이의 명의신탁은 모르고 있었으며 A씨는 대출 원리금 5천여만 원을 명의상 채무자인 B씨에게 줘 갚게 했습니다.
토지 명의는 2009년 B씨에서 한 영농조합으로, 다시 2015∼2017년에는 C씨에게로 신탁됐습니다.
다시 말해 A씨는 1997년부터 사망한 2018년까지 계속 논을 점유하면서 농사를 지었으나 등기부등본상 땅 소유자는 A씨의 부친에서 농어촌공사, B씨, 영농조합, C씨로 바뀌었을 뿐 A씨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A씨가 세상을 떠난 뒤 벌어졌습니다. A씨의 부인과 자녀들이 "A씨의 점유취득시효 20년이 지났다"며 논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민법은 소유 의사를 갖고 20년 동안 평온하고 공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사람은 등기를 통해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근거로 명의를 넘겨달라고 한 것입니다.
하급심은 A씨가 논을 소유하겠다는 뜻을 갖고 평온·공연하게 논을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가족이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를 할 수 없다며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점유를 개시할 당시에 소유권 취득을 위한 법률 행위를 안 한 사람이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법적으로 타인이 소유한 부동산을 무단으로 점유했다면, 그 점유가 '소유 의사가 있는 점유'라고 추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A씨)는 부동산의 소유자(농어촌공사)가 명의신탁약정을 알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1995년 제정된 부동산실명법은 실소유자가 어
재판부는 이 점을 들어 1997년 논 매매는 농어촌공사와 B씨가 한 것이니 명의신탁자인 A씨는 매매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고, 따라서 A씨는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 서영수 기자 engmath@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