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터무니없는 이야기.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놀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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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3월 22일 대구시 서구 합동유세장에서 개구리소년 찾기를 호소 중인 실종소년 가족들 / 사진=연합뉴스 |
개구리소년 사건을 일선에서 수사하며 실무를 책임졌던 한 경찰이 개구리소년들의 죽음은 타살이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 거주 중이던 초등학생 5명이 집 근처 산에 가서 놀다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가 11년 후인 2002년 9월 26일 인근의 와룡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사건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은 6주간의 조사 끝에 소년들의 머리에 두개골에 남은 상처 등을 근거로 소년들이 타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아직까지 해당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소년들의 죽음이 타살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해왔는데 갑자기 수사 일선에 있던 경찰이 '저체온증'이라는 정반대의 사망 원인을 주장하고 나선 겁니다.
이러한 새로운 주장은 당시 현장 취재기자였던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중심으로 펴낸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에서 제기됐습니다. 17일 CBS 뉴스쇼는 "(누군가 아이들을) 살해할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도 없었다"는 김 본부장의 책 속 주장을 소개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책을 통해 5명의 소년들 중 3명의 두개골에서는 상처가 나왔는데 각각 상처의 수도 달랐고, 상흔 역시 디귿자와 브이자 등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소년들의 두개골에 난 상흔을 바탕으로 사용된 범행 도구를 추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이렇다 할 범행 도구를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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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바탕으로 펴낸 책 / 사진=홈페이지 캡쳐 |
이에 김 본부장의 책 속에서 김 전 강력과장은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새롭게 제기했습니다.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에서는 두개골 상흔을 생전에 생긴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했지만, 이는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김 전 강력과장은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만큼 소년들의 사후에 홍수 등으로 밀려온 돌에 두개골이 찍혀 골절흔이 생긴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또 김 전 강력과장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우철원 군의 경우 무려 25군데 외상 흔적이 있다. 범행 도구도 25개가 돼야 한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상흔이) 같은 형태인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경찰뿐 아니라 국과수까지 나서서 범행도구를 찾았는데도 상흔과 부합하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고 밝히고 타살이 아닐 가능성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김 전 강력과장은 소년들이 점심을 걸러 기력이 소진된 아이들이 해가 지고 어두워진 산 속에서 길을 잃었으며, 쌀쌀한 3월 날씨에 비까지 맞아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한편 이와 같은 주장에 유족들은 강력한 반발과 분노를 표했습니다.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이고 해발고도도 300m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다.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김 전 강력과장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