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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 = 김호영 기자] |
종전 판례는 사적 공간인지 여부, 상호 합의 여부, 군기 지장 초래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받아야 할 법익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를 받은 A 중위와 B 상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 군인인 A씨와 B씨는 2016년 일과 시간 이후 군부대 밖 독신자 숙소에서 2차례에 걸쳐 상호 합의 하에 항문성교 등의 성행위를 했다. 이들 중 A씨는 또다른 남성 군인 C씨와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군대 밖 독신자 숙소에서 6차례에 걸쳐 항문성교 등 성행위를 했다.
A씨와 B씨는 2017년 3월 육군의 성소수자 색출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라고 지시했고, 육군 중앙수사단은 군형법 92조6항을 위반했다며 성소수자 군인들 20여명을 입건했다. 수사단은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자백을 받거나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기도 했다. 이후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성애자 차별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들에게 적용된 법 조항은 군형법 92조의6(추행)이다.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동성 군인 사이의 항문성교나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군형법 92조의6에 나오는 '항문성교'는 '계간'(鷄姦·남성 간 성행위)이라는 용어를 2013년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계간'과 달리 현행 군형법의 '항문성교'는 "성교행위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언만으로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라며 "동성 군인 간 성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해석이 당연히 도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또 현행 군형법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외에도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강조하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처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2008년과 2012년 대법원은 군형법 92조6항을 '강제성 여부나 시간, 장소 등에 관계 없이 동성애 성행위를 처벌하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이번 사건의 1심은 성행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고 현행 군형법 규정이 '영외에서 자발적 합의로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A 중위에 대해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상사는 징역 3개월의 선고를 유예받았다. 2심(고등군사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1962년 군형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진 92조는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었다. 미국의 전시법에 나오는 '소도미'(sodomy·수간을 포함한 비자연적인 성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 주로 남성 간 항문성교를 지칭)를 처벌한 국방경비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군대 내 남성 간 성행위 자체를 범죄화하는 조항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비판이 지속해서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2002년과 2011년,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개인이 낸 헌법소원은 이어졌고 헌재는 이 사건들을 심리 중이다.
군인권센터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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