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5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소속의원 172명 전원 명의로 검찰의 일반적 수사권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에는 기소권만 남게 된다.
반면 경찰은 국내 수사기관 중 유일하게 정보수집 기능과 사실상 수사권-종결권을 동시에 갖게 된다.
한마디로 중국 공안과 같은 수퍼파워를 갖는 '공룡경찰'이 되는 셈이다.
민주당은 법안의 시행 유예 기간을 3개월로 정했다.
민주당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어 독점의 폐해가 심각하다"며 검수완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OECD) 35개국 중 77%에 달하는 27개국이 검찰의 수사권을 헌법이나 법률로 보장하고 있어 국제적 추세와 맞지 않다.
게다가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 가운데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의견이 52.1%로 찬성(38.2%)보다 훨씬 더 많다.
대한변협은 물론 한국여성변호사회,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친정부 성향의 법조·시민단체와 정의당마저 여야 합의를 통한 신중한 추진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 172석을 가진 거대 민주당이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묵살한 채, 군사작전하듯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현 정권 비리를 덮기 위한 '방탄입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 비리의혹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의 수사역량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술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검찰 수사권이 박탈되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의혹을 비롯해 라임자산운용 불법정치자금 의혹,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연루된 타이이스타젯 횡령의혹 등 권력비리 수사가 모두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가평계곡 살인미수 등 경찰이 무혐의로 뭉갠 사건들을 앞으로 검찰이 손댈 수 없게 돼 일반 국민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친정부 성향인 김오수 검찰총장마저 "검수완박 법안이 추진되면 범죄자들만 만세를 부를 것"이고 개탄했겠나.
민주당이 속전속결식으로 밀어붙이는 '검수완박'법안은 명분도 없는 위헌적 법안에 불과하다.
수사권 박탈은 검사에게 체포· 구속· 압수· 수색영장 청구 권한을 부여한 헌법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 봉록을 받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 원내의 제1 다수당이 정작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법안에 사활을 거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한 행태이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5일 비대위 회의에서 "검수완박 이슈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이 시점에 과연 국민의 최고 관심사가 검찰 문제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심지어 검찰 개혁론자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페이스북에서 "지금은 속도보다는 침착한 대응이 우선"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이 검찰 수사권 폐지가 반드시 필요한 개혁과제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여론 수렴도 없이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려고 해선 안된다.
그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면서 공감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
민주당은 1년 전에도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서둘렀다.
하지만 공수처의 수사 역량 부족과 경찰의 부실 수사가 겹치면서 정작 피해와 고통을 당한 것은 수많은 민초들이었다.
이제 민주당의 횡포와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문재인 대통령 뿐이다.
박 의장은 법안 통과를 막으려는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시도를 '회기 쪼개기'로 무력화하겠다는 민주당의 편법과 꼼수를 의장직을 걸고 저지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문 대통령의 결단이다.
시중에선 문 대통령이 김오수 검찰총장의 면담요청까지 거부하며 침묵하고 있는 데 대해 "집권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먼 산 쳐다보듯 손을 놓고 있느냐"며 의심하고 있다.
박 의장과 문 대통령이 70여년을 지켜온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시스템 근간을 무너뜨리는 민주당의 입법폭주를 묵인하고 방관한다면 헌정사에 영원히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검사였던 프릿 바바라는 "국가를 이끄는 자들이 검사 공격에 가담하고 독설을 내뱉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을 악마로 몰아붙이면 정의는 위태로워지고 정의에 대한 신념도 파괴된다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국가 지도자가 그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짓밟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박 의장과 문 대통령은 정파적 이익이나 개인의 안위를 떠나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국가 지도자의 자세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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