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반 스탈린 정권은 식량을 빼돌려 무려 천만 명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주민이 굶어 죽게 한 '대기근 사건'을 은폐하지만 영국 기자 가레스 존스는 현장에 잠입해 도청과 미행, 납치, 살해의 위협을 뚫고 전 세계에 소련이 저지른 만행을 보도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보면 왜 언론을 감시견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권력자는 알려지기 원하지 않지만 국민은 꼭 알아야 하는 진실의 한 조각을 위해 때론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게 언론이고 기자의 사명이니까요.
그런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공개한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에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비방하는 전단을 뿌린 남성을 고소한 사건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실렸습니다. 그것도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로요.
미 국무부까지 거론한 이 법은 이른바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사를 잡겠다는 명분이지만 징벌적이라는 게 문제죠. 존스 기자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에 다가가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오류가 있다면 이럴 때도 징벌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면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와 보도에 나서겠습니까.
하지만 지난해 9월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단체,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 밀려 가까스로 '용도폐기'된 언론중재법과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법 등 본회의에 계류 중인 4가지 법안을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과 함께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입법화할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현 정부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172석 의회 권력을 이용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 하는 이유는 뭘까요.
세기의 앵커맨으로 불리는 미국의 월터 크롱카이트가 '적절한 언론자유 따위란 없다. 전적으로 자유이거나 자유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갈파했듯이 이 땅에서 언론의 자유가 꽃피우려면 권력자가 '언론개혁'과 '언론장악'은 염연히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누구를 위한 '언론족쇄'인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