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명예훼손·모욕 범위 지나치게 인정하면 표현의 자유, 공허한 기본권 돼"
↑ 서울남부지방법원 / 사지=서울남부지방법원 홈페이지 캡처 |
'정신분열적 외교', '외눈박이 대통령' 등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 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홍기찬 부장판사)는 오늘(15일) 조태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 등 장애인들이 곽상도·이광재·허은아·조태용·윤희숙·김은혜 등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지난 2020년 6월~2021년 3월 곽 전 의원을 비롯한 피고들은 페이스북과 기자회견, 상임위원회, 논평 등에서 "외눈박이 대통령",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된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라면 집단적 조현병", "외교 문제에서 우리 정부는 정신 분열적", "꿀 먹은 벙어리" 등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지난해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의원들에게 1인당 위자료 100만 원 청구와 함께 박 의장을 상대로 해당 의원들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회부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의 신설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정신분열', '외눈박이', '꿀 먹은 벙어리', '절름발이'라는 표현은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낮춰 말하는 말 또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박 의장에 대한 소는 각하하고 다른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며 "각 표현이 장애인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된다고 평가하게 되면 모욕죄 및 모욕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위 피고들이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 행위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박 의장에 대한 청구는 "원고들과 피고 박병석 사이의 분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각하했습니다.
다만 "피고들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언어습관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벗어나,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이 사건 각 표현은 적절치 못하고 이로 인해 원고들과 같은 장애인들은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 등을 느꼈을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패소 판결 후 원고 측은 취재진에게 "법원 판결은 장애인들 마음에 상처를 한 번 더 주는 결과라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원고 중 한 명인 주성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장애인을 대한민국이 보호하고 그 권리를 지켜줬으면 했는데 당사자로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박 의장과 전·현직 국회의원 6명이 재판 절차에 불성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최갑인 변호사는 "피고 측에서 의견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은 적도 있다"며 "소송대리인을 선임한 후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다가 재
박 의장과 전·현직 국회의원 6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열린 3번의 변론기일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고도 전해졌습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 여부 등을 밝힐 계획입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