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루하게 이어졌던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일부 극단론자들의 협상용 주장으로만 여겨졌던, 그리고 그 의미조차 처음에는 와 닫지 않아 낯설었던 이 단어가 지금 나의 사무실 문 앞에까지 들이닥치고야 말았다.
있을 수 없는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일이 진행되고 있는 답답한 시국에 무력감을 느껴, 복잡한 마음과 잡히지 않는 일손을 뒤로 하고 팔공산 갓바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단상을 적어 본다.
안개인 듯 수분을 한껏 품은 촉촉한 공기가 상쾌하지만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검수완박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가..... 뭐 이런 거창한 생각을 하려는데 이건 또 뭔가..... 책상 위에 두고 온 구속사건이 떠오르고, 월말이 다가오는 데도 아직 많은 미제 건수, 선·후배님들과 격론을 벌이며 법리를 검토 중인 담당 사건들, 소환해 놓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계획 등이 오버랩되면서 생각은 자꾸 소심하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으로 스멀스멀 옮겨 간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종결권이 경찰에도 주어지고 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검사의 일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검사들은 여전히 격무에 시달리고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보완 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수사를 요청하는 형태로, 관련자들이 승복하는 최선의 결과로 사건이 처리되도록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범죄가 발견되어 수사를 개시하려고 하여도 이제는 ‘검사가 수사해도 되는 죄명인가’부터 고민해야 하고, 아니면 추가 수사를 결코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지 여부를 망설여야 하는 것이 웃픈 현실이다.
게다가, 검찰에서 직접 수사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편취 액수 등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기재한 듯한 고소장들이 부쩍 많아졌고,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하였는데 왜 함부로 경찰로 이송해 버리느냐는 민원인의 볼멘소리를 듣는 일은 다반사이고, 경찰에서는 아예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는 말까지 변호사들을 통해 듣고 있다.
보완 수사는 또 어떤가. 보완수사 요구 이후에, 사건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경찰의 보완수사 결과 통보가 지체되고 있고 재보완 수사 요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소인 등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어보려고 하면 ‘왜 검찰에서 신속히 수사하여 처분해 주지 않고 자꾸 경찰로 내려 보내서 사람만 자꾸 오고 가게 하느냐’는 거센 항의를 받는 일도 일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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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용 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
이쯤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제는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박탈하겠다니...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사법체계의 한 축인 검찰의 역할을 제대로 된 보완책조차 없이 하루아침에 없애 버리겠다는 것은 검찰에 몸담고 있는 나뿐만 아니라, 국민 어느 누가 보아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민변을 비롯하여 변호사 단체, 학계는 물론이고 일부 수사권을 더 가져갈 수도 있는 경찰조차도 이에 반대하면서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입장이라고 들었다.
검찰에 그나마 수사 개시권이 남아 있는 6대 범죄는 누가 맡을 것인가, 가칭 국가수사청과 같은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수장은 누가 임명하며 정치적 중립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등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졸속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필연적으로 범죄에 대한 국가의 대응에 공백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박석용 <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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