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보존 위해 물도 못 마셔"
여가부 "해바라기센터 운영 필수적"
"정부조직 개편과 별개로 지속되리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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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가족부 / 사진 = 여성가족부 |
"죽고 싶었다."
4월의 어느 따스했던 날. 방역도 날씨도 조금씩 풀리며 봄기운이 번져가던 그날 A 씨는 태어나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성폭행이 발생한 시각은 새벽 1시였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 씨를 해바라기센터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문제는 24시간, 365일 운영을 원칙으로 하는 해바라기센터에 신고를 접수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A 씨는 경찰서에서 약 30분가량을 대기한 뒤에야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센터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닿은 이후에도 즉각적인 조력이 이뤄지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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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이미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성범죄 피해를 입은 뒤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 조사가 이뤄지기 위한 이른바 '골든타임'은 통상 72시간 이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가 옅어져 검출이 어렵기 때문에 '현장'의 상태를 보존한 채로 센터에 방문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몸 상태 그대로 사흘가량을 버텨야하는 셈입니다. 시간이 지연돼 증거를 검출해내지 못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입니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A 씨도 '현장 보존' 상태 그대로 센터에 방문해 증거 확보를 요청했으나 출입이 거부됐습니다. 체온이 높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A 씨는 피해 발생 직후 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날이 밝고 인근 병원에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아 음성 확인서를 받은 뒤에야 증거채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죽을만큼 힘들었습니다. 증거 채취를 위해 몸을 씻거나 심지어 물도 마시지 못했어요.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증거가 옅어질까봐 두려웠습니다. 모멸감이 사라지지 않아 죽고 싶었어요."
A 씨의 말입니다.
'코로나19 확진상태였던 성폭력 피해자는 증거채취 권고 기간인 72시간이 임박한 상태에서 센터를 방문했고 (중략) 병원과 협조하여 응급실 내 설치된 음압실에서 방호복을 착용하고 증거채취를 시도해 피해자를 신속히 지원했다'
여성가족부 공식 블로그에 게재된 피해지원 사례입니다. A 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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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범죄의 발생시간 / 출처 = 검찰 '2021 범죄분석' |
검찰의 '2021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이 주로 발생한 시간대는 2020년 기준 밤 8시부터 새벽 3시 59분까지입니다. 전체의 43.3%에 달합니다.
범위를 아침 6시 59분까지 늘리면 비율은 52.4%로 늘어납니다. 성폭력 범죄 2건 가운데 1건 정도는 밤 시간대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해바라기센터는 과거 성폭력 피해자가 제각각 분산된 기관을 찾아다니며 피해 사실을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나 가족을 대상으로 365일 24시간 상담과 의료, 법률·수사, 심리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예산부족과 인력난으로 24시간·365일이라는 문구는 구호에 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해바라기센터의 한 관계자는 MBN과의 인터뷰에서 "야간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고질적인 문제"라며 "인력을 새로 채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축하는 상황이어서 야간 의료지원이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지난해 해바라기센터 종사자들의 초봉은 간호사와 심리치료사의 경우 2천 7백여만 원, 부소장은 3천3백만 원 수준입니다. 관련 업종인 사회복지시설과 비교할 때 장기 근무에는 불리하다는 것이 센터 측 설명입니다.
운영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해바라기센터 운영에는 여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청 등 국가 기관이 관여하는데, 막상 책임은 병원이 부담하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의료지원을 필요로 하는 센터 특성상 주로 병원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업무가 가중되면서 부담이 더해졌습니다.
전국에 운영 중인 해바라기센터는 39곳. 이 가운데 일부는 운영난으로 폐소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개소하는 등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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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해바라기센터 / 사진 = 해바라기센터 홈페이지 캡쳐 |
고질적 예산부족과 인력난으로 인한 문제점에 계속 지적되자 여성가족부는 올해 해바라기센터 관련 예산을 173억 원으로 확보했습니다. 지난해 156억 3천만 원보다 11% 늘어난 금액입니다.
간호직군 인력도 16명 증원했습니다. 다만, 예산의 경우 여성가족부 전체 예산 증가율 14%와 비교하면 다소 적은 수치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가능성과 관련해 해바라기센터로 대표되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게재된 ‘피해자 보호, 한부모 가정 지원 등 약자 지원에 꼭 필요한 업무를 맡고 있는 여가부의 폐지를 막아주세요’ 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12일 기준 약 2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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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에 관한 청원 / 사진 =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쳐 |
청원인은 "여가부가 폐지되면 다른 기관에서 여가부의 업무를 이관 받아 진행한다고 하지만, 업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공백의 불안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요"라고 호소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자신을 '강서구 데이트 폭력 사건'의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힌 한 청원인이 "가해자와 저는 빠르면 이번 가을에 마주칠지도 모른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청원인은 "최근에 당선인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추진한다고 확정한 것 같던데, 저는 그러면 여가부에서 해주던 신변보호를 어디서 받아야하나"라고 우려했습니다. 지난 3월 게재돼 내일(13일) 마감될 해당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 운영은 필수적인 조치라 정부조직 개편과 별개로 지속될 것이고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필수적인 정책이므로 없어지거나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기정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ogije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