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은해한테 인정받고 싶어"…숨진 남편, '가스라이팅' 당했나

'가평 계곡 살인 사건' 피해자 윤모(사망 당시 39세)씨가 생전 용의자인 아내 이은해(31)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하소연을 공범 조현수(30)씨에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윤씨는 숨지기 5개월여 전인 2019년 1월 이씨의 내연남이자 공범인 조씨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 이씨에게 무시 당해 괴롭다는 취지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은해한테 쓰레기란 말 안 듣고 싶어", "나도 은해한테 정신병자란 소리 안 듣고 존중받고 싶어", "이제 좀 무서워. 은해가 짜증 내고 욕할까봐" 등의 말을 했다. 또 "나도 현수처럼 은해에게 인정받고 싶다", "은해한테 꼭 인정받아서 잘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윤씨가 이씨로부터 심리적 조작을 당해 판단력을 잃게 되는 일명 '가스라이팅'을 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KBS 뉴스 '디라이브'에 출연해 "이씨는 악의를 갖고 윤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마치 사랑을 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부부 관계를 유지해주지 않는다. 이씨는 윤씨의 헌신적인 애정을 이용해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심리적 압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기업 연구원 출신인 윤씨는 6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이씨에게 경제권을 넘긴 후 개인회생절차를 밟는 등 생활고를 겪었다. 신혼집을 마련하고도 함께 살지 못해 홀로 반지하에 거주했고, 라면 사 먹을 돈이 없어 지인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씨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내놨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이날 YTN 인터뷰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화가 나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며 "이 세 가지가 합쳐지니까 당연히 이런 끔찍한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라고 이씨의 인격장애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윤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씨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에 따른 순응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씨의 사건이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고유정 사건'과도 비슷하다고 봤다. 그는 "둘 다 여성이고 한 때 굉장히 친밀한 사람을 이용해 범죄까지 저지른 사건"이라며 "친밀한 사람을 공격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편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와 조씨는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쯤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에게 다이빙을 강요한 뒤, 윤씨의 구조 요청을 묵살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윤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3일 첫 검찰 조사 후 잠적해 4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하린 매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