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에 중고 매물로 올려도 팔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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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일 중지된 방역 패스 |
“QR 인증 부탁드립니다.”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QR 인증을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지난달 1일 QR 인증을 의무화 했던 방역 패스가 중단됐습니다. 한결 가게 이용이 편해진 소비자들과 다르게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태블릿PC 등 QR 인증 기기가 애물단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내놓아도 한꺼번에 QR 인증 기기 등 매물이 몰리면서 처분이 쉽지 않은 상황. 이미 체온계, 손 소독제 등 다른 방역 장비들도 구매하느라 지출이 컸던 자영업자들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영업자 삶의 현장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취재진이 직접 만나봤습니다.
서울 홍대거리에서 20년 째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일섭 씨는 취재진에게 가게 매출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이 씨는 영업시간 제한 등 거리두기 정책에도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손님들 덕분에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이전에 비하면 매출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빠진 가게 사정을 전하던 이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어떤 날은 매출이 없는 날도 있었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마음이 조금 울컥해지는데 너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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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홍대거리 주점 자영업자 이일섭 씨11 |
거리두기와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서 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QR코드를 체크할 수 있는 태블릿PC를 구입하는데 그 당시에 45만 원 정도 들었고요. 손 소독제하고 온도 감지기를 그 당시에 25만원 주고 샀고요.” 이 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보다 맘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환기가 잘 되는 접이식 유리창으로 바꾸었습니다.
가게에 찾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행복해 대출을 받아가며 영업을 이어나간 이 씨. 없는 소득에 방역 장비를 구비하는 일이 부담이 없진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주변에 소상공인들은 대출을 받아가면서 하는 것도 벅찬데…”
취재진은 서울 번동의 한 유흥주점을 찾았습니다.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박명근 씨는 영업을 아예 하지 못한 적도 있었던 만큼 매출이 이전보다 10분의 1로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중이용시설은 이용자의 발열 및 호흡기 증상 유무를 확인해야 해 200여 만 원을 주고 체온계를 구입했습니다. “장비를 구입해야 되니까 부담은 되죠. 매출은 없는데 장비를 구입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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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번동 유흥주점 자영업자 박명근 씨 |
방역 물품을 구매하는데 정부가 10만 원의 지원금을 보탰지만 도움은 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방역(물품)지원금은 저희가 (방역장비를) 선구매하고 후결제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죠.” 유흥주점의 규모가 컸던 만큼 나가는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박 씨. 힘든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알리고자 밀었던 머리를 모자를 벗어 취재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취재진은 뒤이어 서울 장안동의 한 탁구장을 찾았습니다. 탁구장 한 쪽 벽면에 걸린 칠판에는 운동을 하기 전 지켜야 할 방역 수칙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탁구장을 운영하는 김미영 씨는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짧아진 운영 시간에 회원들 수가 점점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100평이 넘는 탁구장 규모에 나가는 월세도 부담스러웠습니다. “회원 분들이 줄다 보니까 매출은 거의 없고 가게세 내기도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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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장안동 탁구장 자영업자 김미영 씨 |
김 씨가 서 있던 카운터 옆 수납공간 안에는 손 소독제가 가득했습니다. 넓은 공간을 쉽게 소독하기 위해 구매한 연막 소독기도 근처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출입하는 회원들을 보다 수월하게 관리하기 위해 지문 등록기를 구입했고 그 옆에는 새로 산 체온계가 눕혀져 있었습니다.
김 씨는 방역 패스가 중단되면서 일부 필요가 없어진 기기들을 처분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매물을 반값에 올려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지문 인식기라든가 연막 소독기라든가 올려놓긴 했는데 아예 거래가 없어요. 연락도 안 오고 거래도 안 되고” 김 씨는 자신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 30여 만 원에 구매한 지문인식기를 15만 원에 올린 화면을 취재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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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0일 국회의사당역에서 진행된 자영업자 촛불시위 |
지난 1월 10일 눈발이 흩날리는 밤,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자영업자 150여 명이 촛불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촛불을 들고 모여 당시 밤 9시면 문을 닫아야 했던 영업 제한을 풀고 QR 인증을 의무화하는 방역패스를 멈춰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습니다. 방역패스는 멈췄고 영업 가능 시간도 늘었습니다. 거리두기를 해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북적이는 영업장을 기다렸을 자영업자들. 적절한 보상을 바라는 소망은 아직 현장 곳곳에서 들리고 있었습니다.
(MBN에서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아래 기사와 같이 보도한 바 있습니다. 기사 링크로 들어가시면 자영업자들의 더욱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