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로마에선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시가행진을 할 때 뒤따르는 노예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습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으니 겸손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요즘 또 다른 라틴어가 김진욱 공수처장에 의해 소환됐습니다. 직원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베리타스 보스 리베라빗'을 인용하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거든요. 또 신년사에선 '천천히 서둘러라'는 뜻의 '페스티나 렌테'도 소환한 바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는 귀족과 사제들의 언어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데, 김진욱 처장도 혹 그런 걸 바란 걸까요.
공수처는 '친정부수사처'라는 오명을 쓰고 있고, 법조계, 정계, 시민사회계와 공수처를 비판한 기자, 심지어 그 가족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 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김 처장은 또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자신의 관용차에 태워 조사한 뒤 조서조차 남기지 않아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고, 대선을 앞두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집중 수사해 '윤수처'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수사력은 물론 정치적 중립성까지 의심받는 공수처 처장이 진리를 언급한 겁니다.
김 처장이 신년사에서 인용한 '페스티나 렌테, 천천히 서둘러라'는 대표적인 형용모순 문구입니다. '침묵의 소리'나 '작은 거인'처럼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켜 청량감을 주지요.
물론 공수처장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건 모호한 라틴어가 아니라 확실한 상황설명과 조직을 살릴 개혁 청사진입니다.
말은 상황과 맞아떨어졌을 때 듣는 이에게도 와닿습니다. 김 처장에게 이런 라틴어 명언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네요.
'네모 세 세두캣(Nemo Se Seducat)', '페리쿠럼 인 모라(Periculum In Mora)'. '자신을 속이지 마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공수처 개혁 거론되는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