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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외경 |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노동자 유족급여를 가해자에게 청구할 때 지급금 전액이 아니라 가해 기업의 책임 비율만큼만 회수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산재 노동자의 손해가 전부 보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보험급여 중 산재 노동자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하고, 산재 노동자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4일 근로복지공단이 한국전력과 전기업체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소송의 발단은 전봇대 이설공사 중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입니다.
2017년 한국전력으로부터 도로 개설에 따른 배전공사를 도급받은 A사의 직원들은 전선을 걷어내면서 전봇대 본주와 지주(본주를 지탱하는 전신주)에 연결됐던 밴드도 없앴습니다.
통신사의 도급으로 전봇대 광케이블 철거공사를 수행하게 된 B사 작업팀장은 전신주 지지 밴드가 없어 쓰러질 위험이 있다고 보고 팀원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현장에 도착한 한 직원이 전신주로 다가가다 갑자기 넘어지며 덮쳐온 전신주에 머리를 다쳐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급여 2억2천여만 원을 지급한 뒤 한국전력과 A사에 급여 전액을 구상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쟁점은 사고에 과실이 있을 경우 ▲ 유족 손해액에 과실 비율을 우선 반영하고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에게 준 급여를 공제하는 방식(과실상계 후 공제)과 ▲ 유족 손해액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돈을 먼저 뺀 다음 과실 비율을 계산하는 방식(공제 후 과실상계)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였습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택해왔으나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강보험공단 관련 사건에서 종전의 판례를 깨고 '공제 후 과실상계' 원칙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공단의 구상권을 피해자의 권리에 우선해서 인정해주면 실질적으로 공단이 피해자를 위해 본래 부담했어야 할 부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지난해 전원합의체 판단은 건강보험공단 사례에 한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이 문제가 된 이번 사건의 원심(2심)은 예전처럼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도출한 '공제 후 과실상계' 법리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보상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재판부는 "재해 근로자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보험 급여를 하도록 하는 취지는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재보험의 책임보험적 성격의 관점에 치중했던 종래의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보험에 관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선언된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을 따르는 것이 법질서 내 통일된 해석"이
아울러 "사업주가 산재보험 보험료를 전액 납부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하더라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위험에 노출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과 근로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다고 하여 전적으로 근로자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서영수 기자 engmath@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