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삿짐을 옮기던 사다리차 리프트가 꺾이면서 주차장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사고로 인근을 걷던 70대 할머니가 숨지고 함께 있던 손자가 다쳤습니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 5대도 떨어진 사다리에 파손됐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찾은 아파트 주차장엔 사고의 흔적들이 많이 치워져 있었지만 리프트가 떨어져 생긴 자국은 아직 선명했습니다. 취재진은 사고가 나던 순간 17층에서 포장이사를 하던 업체 사장 A 씨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A 씨는 이사를 다 끝내고 사다리를 아파트에서 떼어 직각으로 세운 뒤 접으려고 하는 과정에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1초, 0 점 몇 초 그 사이에 '와장창' 소리가 나길래, 문 열어 봤더니 울고 불고 소리가 나는 거예요.” A 씨는 사다리를 아파트에 묶어 놓았던 테이프를 떼고 철수할 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바람이 강하면 사다리차를 사용할지 안 할지 사다리차 업주가 주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한 A 씨에게 바람의 세기를 잴 수 있는 기계가 있었는지 묻자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A 씨는 아파트 입구와 사다리차를 세워 둔 곳이 인접해 집으로 들어가는 보행자들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평소에도 보행자를 통제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도 했습니다. 사다리차를 이용해 이삿짐을 운반할 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보행자들에게 주의를 줘야 한다는 등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A 씨의 대답은 “없다” 였습니다.
포장이사 업체는 사다리차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함께 포장이사를 합니다. 하지만 포장이사 업체는 세대 안에서 작업을 하는 만큼 사다리를 이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외부 사고를 대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포장이사 업체가 사다리차 안전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을 때 포장이사가 한창인 현장에서 사다리차 사고를 막을 사람은 사다리차 업주만 남았습니다.
이삿짐을 옮길 때 어떤 안전 조치들이 있을까. 취재진은 사다리차 업체(이번 사고와는 무관한 업체입니다.) 김재식 대표를 만나 사다리차가 사다리를 아파트 벽에 대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사다리를 설치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사다리차가 쓰러지지 않게 아웃트리거(지지대)를 내리는 작업이라고 설명한 김 대표는 그보다 먼저 큰 말뚝을 번쩍 들곤 차 옆에 세웠습니다. 사다리차 주변에서 안전을 관리하는 인원을 따로 뽑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 보행자들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주의시키기 위한 그만의 방법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 때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묻자 김 대표는 특히 안전에 신경 쓰지만 갑자기 부는 바람을 대비하기는 한계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다리를 직각으로 세워서 접는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벽에 건 상태에서 내리죠.” 하지만 혼자서 사다리 리프트 운행도 신경 쓰면서 주변의 안전사고까지 모두 책임지기가 벅찰 때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이삿짐 리프트 사고에 대비해 안전 수칙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안전보건공단 안전수칙에 따르면 “강우(10mm/Hr), 강풍(10m/s)등 기상조건 악화 시 작업을 금지”하고 있고 “사다리차 작업반경에는 이삿짐의 낙하 및 사다리차의 전복 위험이 있으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안전수칙은 권고적인 성격에 가깝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다리차 안전을 위한 법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37조에 따르면 “비, 눈, 바람 또는 그 밖의 기상상태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법이 구체성이 떨어지다 보니 실효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삿짐 사다리는 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양중기’로 분류가 되는데, 같은 분류의 크레인은 작업을 해선 안 되는 풍속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가 돼 있는 반면 이삿짐 사다리는 없습니다. 안전수칙에는 있는 풍속기준이 법에선 빠진 겁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안전보건규칙은 사고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기준 위반만 있으면 처벌이 가능한데 ‘근로자에게’ 해를 끼칠 때와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사고가 발생해도 법 적용이 모호한 경우가 생깁니다. 안전보건공단이 사다리가 쓰러져 근로자가 다치는 게 아니라 보행자가 다치면 업주는 통상적으로 (안전보건규칙 위반이 아닌) 업무상 과실로 처벌을 받게 된다고 설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다리차가 안전 검사를 받지 않아도 ‘과태료’ 처분만 받는다는 점은 문제를 더 키웁니다. 대한산업안전협회는 사다리차의 아웃트리거(지지대)나 소모품의 문제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안전 검사를 2년에 한 번씩 시행합니다. 협회 관계자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이번 노원구 사다리차 사고를 두고 안전 장치의 ‘이상 가능성’을 짚으면서 검사의 중요성을 되짚었습니다.
“사다리별로 작업할 수 있는 최대 높이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최대 높이 이상으로 인출이 되어 버리면 사다리가 꺾입니다.“ 사다리차에는 ‘최대 높이 제한 장치’라는 게 있어서 사다리가 펼칠 수 있는 최대 높이 이상으로 펼쳐지려 할 때 이를 자동으로 제어합니다. 관계자는 이 장치에 문제가 발생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안전 검사를 꼼꼼히 받고 미리 안전 장치들을 점검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지만, 안전 검사를 받지 않았을 때 처벌은 약하기만 합니다. 안전 검사를 받지 않는 사업주는 현행법 상 과태료만 내면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 검사의 중요도를 높이기 위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단 전문가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안전검사를) 형사처벌 대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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