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힘들어"…타인의 권리까지 침해할 자유는 없어
또 내려야 할 승강장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시위로 지하철이 멈추자 출근길 시민들이 모두 지상으로 올라와 버스를 이용한 것입니다. 숨쉬기도 힘든 만원 버스에서 원하는 정류장에 제때 내리기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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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시위로 인해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 내부 |
장기화되어가는 시위에 출근길 시민들도 지쳐가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향한 시민들의 비난은 빗발쳤고, 최근에는 국민청원글도 여럿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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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시위와 관련한 국민청원글 |
한 청원인은 글에서 전장연 활동가의 말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한 활동가는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헌법에 보장된 일반 시민들의 자유권은 침해해도 괜찮다는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청원에 동의해 달라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많이 보였으나 청원 인원이 20만 명에는 크게 미달해 안타깝게도 정부의 답변을 듣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전장연과 시민들의 갈등은 더 격화되어가는 양상입니다. 지난 15일 전장연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이버 공격을 받아 홈페이지가 다운됐고 그리고 구글 드라이브도 공격을 받아 파일이 삭제됐다고도 공지했습니다. 또한 활동가들이 지나가던 행인에게 협박을 당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불편을 호소하며 멈춰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전장연의 움직임에 동의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한 시민은 아무래도 그 사람들만의 고통이 있고 또 어려운 게 있으니 시위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다른 시민은 본인도 다리 수술로 장애를 갖고 있는데, 지하철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불편한 게 너무 많다며 전장연의 행동에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왜 (시위를) 하는지 모르겠고, 전장연이 얘기하는 목적과 지하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장연 이형숙 공동대표와 인터뷰가 있던 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혜화역에 부착된 스티커를 떼러 가겠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혜화역 승강장으로 내려가 스티커를 떼러 온 시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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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역 벽면에 부착된 스티커들 |
직접 제거제를 가져와 스티커를 제거 중이었던 시민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시간 날 때마다 혜화역 승강장에 온다고 밝혔습니다. “여기 붙은 건 그나마 이것(제거제)으로 지워지는데, 저쪽에 붙은 건 아예 안돼요. 스티커 만든 업체가 달라서 접착력이 다른 거 같더라고요.” 전장연 측에 궁금한 점은 따로 없냐고 묻자, 궁금한 건 없고 시위가 불법인데 하는 게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스티커를 떼다가 걸리면 전장연 측의 항의를 받기 때문에 역사 위로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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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스티커를 제거하러 온 시민 |
옆에 서 계시던 환경미화 직원은 팔이 너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스티커) 제거하니 너무너무 팔이 아파요. 맨 처음엔 제거해도 계속 가져다 붙이는 거예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벽뿐만 아니라 스크린도어랑 유리에도….” 역무실에 가면 증거 사진들이 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날 이형숙 전장연 공동대표는 인터뷰에서 시위가 모두 다 끝나면 직접 제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하철 타기 시위를 바라보는 다른 장애인들의 시각은 어떨까요? 사실 시위 현장에서 전장연 소속이 아닌 장애인들을 찾아보았지만,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장애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이번 시위를 바라보는 일반 장애인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거동에는 불편이 없지만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A 씨는 메일로 답변을 해왔습니다. A 씨는 처음엔 "오죽하면 이렇게 나왔을까"라고 생각하며 분명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 개선, 이동 시설 확충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 대해 이동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으니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다시 시위를 시작해 조금 의아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비장애인들에게 역효과를 미치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는 의견을 보내주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 이동 시스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A 씨의 친구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전동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전동 휠체어로 이동할 때 출입이 가능한 곳인지 턱은 없는지 미리 조사를 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약하자면 '교통수단을 이용할 시스템은 갖춰졌으나 갈 곳은 없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습니다.
사고로 하지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B 씨와는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한 B 씨는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이 굉장히 잘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시위하는 분들도 이해는 가지만 예산이 걸려서 더디게 진행될 뿐 엘리베이터 설치도 다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에 시위하는 것은 좀 피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회원의 생각들은 팽팽히 맞섰습니다. 한 회원은 "이렇게라도 하니 관심이라도 갖는 것"이며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 등도 시위하시는 분들이 있어 바뀐 것이라며 옹호하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반면 다른 회원은 장애인 시위 때문에 장애인인 본인이 출근길에 더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불편을 느끼니 더 화가 나서 시위하는 이유 등을 더 알아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며 시위 목적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회원들이 시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 받는 시민들이 너무 많으니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지하철 타기 시위의 갈등의 근본적 원인으로 교통약자 배제적인 분위기의 사회정책을 꼽았습니다. 한 예로 '장애인 전용 택시'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배제라고도 말했습니다. 일반 택시를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전장연 시위가 시민들에게 소구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장애인 중심적으로 접근한 게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현 장애인 이동권의 개선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에는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노인들,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지하철 타기 시위' 취재[중]진담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지만, 시위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동안 지체되어 온 장애인 이동권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우리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이시열 기자 easy10@mbn.co.kr ]
취[재]중진담
https://www.mbn.co.kr/news/society/4700857
취[재]중진담 - 지하철 타기와 사람들, 시위에 나선 이유는? ②
https://www.mbn.co.kr/news/society/4702449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