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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정발산역 인근 공유 오피스 |
고양시 정발산역 인근의 한 공유 오피스. 복도 맨 끝 오른편에 위치한 방에 마련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작년 12월, 지하 3층에서 기둥이 파손된 마두역 인근 상가에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한 최희선 원장이 임시로 마련한 상담센터입니다. 상담센터를 방문하던 사람들을 생각해 원래 일터에서는 멀지 않은, 1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 원장이 마두역 상가 건물에 상담센터를 차린 건 불과 6개월 전입니다. 갑작스럽게 기둥이 부서지고 ‘정밀진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건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시의 명령에 급하게 공유 오피스 2곳을 빌려 상담센터를 차렸습니다.
매출이 줄어 직원들 월급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최 원장은 시에서 지급된 지원금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었습니다. 최 원장은 지원금 200만 원으로 공유 오피스 임대료를 내고 설 차례상에 필요한 재료를 살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 아닐까’ 두려움에 떨면서 건물에서 뛰쳐나오고 막연히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최 원장은 지원금 덕분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다고 기억했습니다.
고양시청은 지난달 24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과 ‘고양시 사회 재난 구호 및 복구 지원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마두역상가 사고를 사회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했습니다. 피해 상인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사고가 발생하고 20여 일이 지난 뒤입니다.
정밀진단이 진행되고 있어 기둥이 왜 파손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선제적으로 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겁니다. 한 달 가까이 건물 사용제한 명령으로 상인들이 장사를 하지 못해 생계를 이어 나가지 못하자 시가 사회 재난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국가는 기본적으로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를 수습하고 복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재난의 종류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하나가 가뭄, 홍수와 같은 자연 재난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사회 재난입니다.
재난안전법 제 3조를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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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안전법 제 3조 |
2016년 국민안전처가 발행한 “사회 재난 구호 및 복구 업무편람”에 따르면 이 사회재난은 대부분 ‘원인자’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원인자가 명확해야 수습 복구에 필요한 비용이나 보상을 책임질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론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고 원인자가 보상하기를 꺼려하거나 보상 능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지자체나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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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 다산동 주상복합 건물 화재 |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작년 4월, 남양주시 다산동 주상복합 화재 때도 있었습니다. 화재로 인해 상가 169호와 300세대가 넘는 입주민이 피해를 보게 됐는데 화재 원인 규명에 시간이 오래 걸리자 같은 해 6월, 남양주시가 지원금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도 남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재난안전법과 남양주시 조례에 근거해 상가에 200만 원, 입주민은 경우에 따라 150만 원 또는 3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 재난으로 인정받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곧바로 지원금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지고 진행되는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지원금 지급 기준이 명확한 자연 재난과 다르게 사회 재난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시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이 사회 재난이 맞는지 검토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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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 진단이 진행 중인 마두역 기둥 파손 상가 |
어렵게 받은 지원금이 고맙기도 하지만 마두역 상가 상인들은 지원금은 문제 해결책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인들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인들은 지자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상가 기둥이 파손된 원인을 찾는 정밀진단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피해 정도를 이유로 사회 재난으로 완벽히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시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꺼려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임대인과 임차인간 협상이 피해 보상의 주요한 열쇠가 되면서 민사 영역에 시가 끼기도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최 원장은 최근 임대인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 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인테리어에 들인 비용을 말하자 임대인이 보였던 태도를 묘사한 최 원장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보상해야 할 줄 몰랐다면서 ‘나는 몰라, 나는 몰라’ 하시더라고요.”
마두역 상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원장 김 모 씨는 답답한 마음에 지난달 일산동구청에서 열린 고양시청 관계자들과 임대인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보강 공사를 진행하거나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실질적인 보상 문제는 임대인과 따로 만나 협상을 벌여야 했습니다.
한 달 넘게 일을 하지 못해 대리기사 일을 몇 번 했다는 김 씨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는 시청의 태도가 야속하다고 전했습니다. “쉽지 않더라도 대출 형식으로 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임대인과 보상 문제를 협상 중인 또 다른 상인 A 씨는 협상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며 익명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A 씨는 임대인이 만나자 해서 나간 자리에서는 퇴거해 달란 말만 들었고 보상 협상은 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전 비용이나 피해액은 보증금 정도밖에 못 빼준다고 해서 반발을 하니까, '일단 올려봐라. (그러면) 된다, 안 된다 얘기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A 씨는 시와 임대인 측이 서로에게 사고 책임이 있다고 싸우는 동안 임차인만 힘들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모여서 대응 방안을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모여서 뭘 하려고 해도 사람들이 생계가 당장 급하기 때문에 각자 다른 일, 가게를 알아보고 있어요.”
피해 상인들은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임대인들과 협상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뒤 경제적인 피해가 지속돼 슬프고 억울하지만 도움 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앞으로 소망이 무엇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터뷰에 응했던 상인들이 공통적으로 다시 안정적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고양시청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