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다 3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30대 노동자의 유서와 동영상이 뒤늦게 공개됐다. 해당 영상과 글에는 자신이 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의 내용과 성추행,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었다.
24일 MBC보도에 따르면 세아베스틸 직원이던 유모(36)씨는 2018년 11월25일 금강 하구 한 공터에 세워진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공장 앞 자취방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지 3일 만이었다.
유씨가 세아베스틸에 발을 처음 담은 것은 2012년 4월 계약직으로 입사하면서다. 이후 정규직이 된 유씨는 생을 마감하기 전 승진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숨진 유씨와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마지막 순간 촬영한 25분 길이의 영상과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가 있었다. 또 유씨가 입사한 지 두 달째였던 2012년 6월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 동료들과의 야유회 사진도 공개됐다. 사진에서는 2명만 옷을 입고 있고, 유씨와 나머지 사원들은 발가벗은 채 가랑이만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 사진에 대해 유씨는 "지모씨가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다. 회사 PC에 더 있을 테니 낱낱이 조사해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적었다.
지씨는 사진에서 옷을 입고 있는 2명 중 한 명으로 반장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입사한 직후부터 지씨가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괴롭힘을 저질렀다고 지목했다.
유씨는 유서에서 "지씨가 입사한 달에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16년 12월10일 16시30분쯤 한 복집에서 볼 뽀뽀" "17시40분쯤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 등 구체적인 성추행 기록도 적어뒀다.
유씨는 야유회 사진에서 옷을 입고 있는 나머지 한 명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썼다. 유씨의 선배 조모씨다. 그는 조씨에 대해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라"고 했다.
인사팀 송모 차장에 대해선 절차대로 쓴 연차를 문제 삼거나, "귀는 잘 들리냐" 확인하면서 귀에 체온계를 강제로 꽂았다고 적는 등 6년간 당했던 일들을 낱낱이 적었다.
회사 측은 유씨가 사망한 이후 2019년 4월 조사에 나섰다. 지씨는 야유회의 나체사진에 대해 "공 차고 더워서 물 속에 들어가려
조씨는 유씨의 성기를 만진 성추행과 관련해 "말수가 적은 고인을 살갑게 대하려 한 것"이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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