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후 3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구 서울약령시 입구 모습. [이상현 기자] |
상인들은 인삼·산삼·흑삼 등 각종 삼은 물론, 능이·송이·영지 등 버섯류와 녹용까지 늘어놓고 호객 행위에 열을 올렸다. 아득한 한약 향을 맡고 있으면 문득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드는 곳.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약재시장, 서울약령시다.
'서울약령시(藥令市)'는 종로에서 동대문과 신설동을 지나 청량리로 향하는 방향에 위치한다. 이곳은 조선 시대 백성을 위한 의료·구휼기관 '보제원(普濟院)'이 과거 자리했던 터다. 보제원 터는 서울시 유물 23호로 지정돼 그 표지석이 지금도 남아있다.
지난 1960년대 인근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한약재 상권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상인들이 몰려든 것이 서울약령시의 구체적인 시초다. 지금은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 8만여평 부지에 한의학 관련 전문업소 1000여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이곳에서는 한의원은 물론, 약국과 한약국, 한약방, 한약재상 등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약령시를 찾은 소비자들은 집에서 간단히 차로 우려내 마실 만한 약재를 고르는 데 열중했다. 소비자들은 대부분이 60대 이상 중장년이었다.
환절기인 만큼 기관지에 좋은 약재를 사러 왔다는 70대 소비자 A씨는 "양약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작용 없이 효과를 내주는 건 바로 한약"이라며 "도라지와 말린 생강을 사러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선물할 삼 종류를 보러 왔다는 60대 소비자 B씨는 "프랜차이즈 제품도 좋지만, 직접 뿌리 하나까지 보고 사고 싶어서 왔다"며 "그래도 시장 인심이라고, 삼 하나 사면 다른 잔 약재도 조금 챙겨주더라"라고 했다.
↑ 서울약령시 내 한방복합문화시설 '서울한방진흥센터' 2층 전시관 모습. [이상현 기자] |
또 부항과 저울, 작두, 약탕기 등 한약방에서 사용되는 도구도 전시돼 있어 도심 속 작은 박물관의 면모를 자랑한다. 몇 해 전 사극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인기를 끈 조선 시대 한의학자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이 센터가 코로나19 전 한때 한국 여행 코스로 꼽히기도 했다는 것이 주변 상인들의 설명이다. 상인들은 최근에는 한약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매출도 다소 감소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약재 가게를 운영했다는 70대 C씨는 "교통사고 환자나 수십년 단골손님들만 간혹 이곳을 찾아온다"며 "시장 맥이 끊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C씨는 "사람마다 다른 체질에 약을 쓰는 건 한의학이 으뜸"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관심
골목마다 한약재 냄새가 피어나는 서울약령시에는 한약방과 한약재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서울한방진흥센터에서는 족욕 체험과 한방 뷰티숍 구경 등을 해볼 수 있다. 전통 한옥 분위기로 꾸며진 센터 앞 카페에서는 전통 차 체험도 가능하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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