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은 각자…물리적 위협 우려도"
"협회·노조·언론사 차원 대응 필요"
↑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 모 씨가 기자들이 범행 동기를 묻자 들고 있던 마이크를 걷어차는 모습 / 사진 = MBN |
얼마 전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온 사회에 충격을 준 강 모 씨가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두했습니다. 현장 기자들은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친구를 억울하게 잃은 이들이 가장 묻고싶은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 씨는 대답 대신 "보도나 똑바로 하라"고 소리치며 기자가 든 마이크를 걷어찼습니다.
강 씨가 걷어찬 마이크는 통상 '와이어리스'라고 부릅니다. 군인의 총기, 목수의 망치처럼 방송기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취재 도구입니다. 그런 도구를 언론중재법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인물이 걷어찬 장면은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옵니다.
기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일반명사처럼 쓰입니다.
특히, 여기자들에 대한 혐오표현과 원색적 욕설은 그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도를 넘는 수준입니다. 인신공격은 물론이고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음담패설도 비일비재합니다. 인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대 여기자 A 씨는 이 같은 언어 폭력에 대해 "초반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하도 많이 (악플이) 달려서 그냥 넘긴다. 생각보다 심해서 댓글은 이제 거의 안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 20대 여기자에게 쏟아진 언어 폭력 사례 / 사진 = MBN |
또 다른 여기자인 B 씨 역시 심한 욕설에 시달린 일이 있습니다. 사회부 기자인 B 씨는 일베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며칠간 모욕적인 DM(다이렉트메시지)를 받았습니다. B 씨는 "SNS까지 털고 과거 사진과 글을 박제(온라인 공간에 특정 내용을 계속 노출시키는 일)하기도 했다"며 "나중에는 일베에서 기사와 관련 없는 부모 욕과 인신공격이 지속됐다"고 밝혔습니다.
↑ 일베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가 언어폭력에 노출된 사례 / 사진 = MBN |
법적대응을 고려했다가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B 씨는 "일일이 욕설 내용을 찾아 자료화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며 "실제 고소했을 때 해코지 등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에 주변에서 우려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자들이 언어폭력에 상시 노출돼 있지만 대응방안은 마땅치 않은 셈입니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실제 실태 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신우열 경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기레기'로 대표되는 언론혐오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여기자에 대한 공격으로 중첩돼 나타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합니다. 신 교수의 말입니다.
"기자에 대한 공격은 빈도나 정도가 아무래도 여성에 쏠리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고, 언론인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과 관련한 연구는 보통 여성 언론인을 대상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자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적으로 고통받는 상황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응집된 혐오의 에너지는 실제 현실 공간에서 폭력으로 분출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 국내 한 방송사의 여기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와 관련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인물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기자협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보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렇게 기자에게 위해를 가하고 협박하는 행위가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면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나 보도활동은 불가능하며 이는 심각한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국민의 알권리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다시 신우열 교수의 말입니다.
"지금은 여야 가리지 않고 서로의 지지자가 자신의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으로 비쳐지는 기사를 쓴 기자를 기레기로 부르는 패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나 법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무엇을 쓰든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 상황입니다."
폭력으로 분출된 혐오는 우발적 사건을 넘어 더욱 체계화되는 양상입니다. SNS 상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기자 낙인찍기는 최근 '마이기레기닷컴(이하 닷컴)'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됐습니다.
↑ 마이기레기닷컴 / 사진 = 마이기레기닷컴 캡쳐 |
닷컴에서는 기자들의 개인 신상정보와 보도를 모아 기록·공개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소개글에서는 "기레기잡는 사이트가 시작됫다. 기자와 언론인은 단순히 민간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준공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이트 개설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기자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폐단도 많다. 그래서 비리잇는 기자들을 조국털듯이 털어 기자입에서 '기자질 못해먹겟네'라는 말이 나오게끔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좋은 기자들만 남고 나쁜 기레기들을 정리하게끔 만들어서 기자사회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만들어보자는게 의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기자들에게 현상금을 걸어 각종 제보를 받아, 제보내용이 구체적이면, 기자들에게 직접조사를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일자 닷컴은 "저희가 지금까지 한거라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기자님들의 정보를 한군데 모아놓은 것 뿐"으로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직 기자들은 대체로 회의감이 든다는 반응입니다. 국내 유력 일간지의 한 기자는 "명예훼손과 개인정보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선을 세게 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농밀한 증오와 혐오에 한치 의심 없는 확신. 누가 현실에서 크게 다칠까봐 무섭다"는 우려의 시선도 제기됐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협회나 노조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가운데, 한국기자협회 관계자는 법적 대응 방침과 함께 피해 기자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에 내놓은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인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는 부록까지 340쪽에 걸쳐 혐오의 구체적인 정의와 유형 등이 망라돼 있습니다. 혐오표현의 유형은 크게 '차별적 괴롭힘'과 '차별표시', '공개적인 멸시·모욕·위협', '증오선동' 등으로 구분됩니다.
↑ 혐오표현의 유형 / 출처 =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2016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
보고서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2015년 발간한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항하기'라는 매뉴얼에서 혐오표현을 "특정한 사회적, 인구학적 집단으로 식별되는 대상에 기반을 두고 위해를 가하도록 하는 선동(특히,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옹호하는 표현"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국내연구진 중에는 이준일 교수가 2014년 '고려법학'에 수록한 '혐오표현과 차별적 표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과 방식'이라는 논문에서 혐오표현을 "특정 대상에 대한 내면의 혐오감을 외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소속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행위(또는 표현물)"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쉽게 표현해보면 차별과 편견을 선동해 증오를 부추기는 행위를 혐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이기레기닷컴의 댓글에서 이 같은 양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척살'이나 '박멸', '살처분' 등의 단어를 통해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폭되는 모습입니다.
↑ 마이기레기닷컴에 올라온 댓글들 / 사진 = 마이기레기닷컴 캡쳐 |
보고서에는 혐오표현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적시돼 있습니다. 혐오표현은 일반청중으로 하여금 차별과 혐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적의, 폭력에 동참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를 보통 '선동(incitement)'이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선동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해악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혐오표현의 유형 중에서도 선동을 해악이 큰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 발생하는 적대성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전제로 합니다. 표현행위나 표현을 매개로 한 선동행위는 물리적 폭력이나 제노사이드 등의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를 형상화한 것이 '혐오의 피라미드'입니다. 이 때 혐오는 반드시 순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단계를 건너 뛰어 단번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혐오 피라미드에서 편견으로 시작한 괴롭힘은 차별로 이어지고, 폭력으로 발전해 궁극적으로는 집단학살에 이를 수 있습니다.
↑ 혐오의 피라미드 / 출처 =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2016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
신우열 교수는 "혐오 피라미드 구조를 누군가는 소위 '오버하지 말라'고 폄하할 수 있다. 그러나 유태인이나 흑인의 슬픈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결국은 모두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며 "아주 사소한 생각을 가만히 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나 언론을 대상으로 한 혐오가 비즈니스로까지 나타나는 연속성 측면에서 마이기레기닷컴을 봐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돈을 얼마 버느냐 보다 실제 돈벌이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다른 사회적 소수자 그룹과 비교해볼 때 기자가 과연 사회적으로 소수자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권위의 혐오 연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측면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기자 개개인이 소속된 매체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차이가 크게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혐오가 기자들 사이에서도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합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와 함께 세대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연차가 높은 고참 기자일수록 이 같은 비판을 소위 '일 열심히 했다'는 훈장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연차가 낮은 경우 직업적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에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사회적 신뢰'라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무너지기 시작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 이후 기자가 된 저연차 기자들 사이에는 "기레기의 시대에 기자가 됐다"는 정서가 유의미한 경향성으로 확인된다고 신 교수는 증언합니다. 신 교수의 말입니다.
"언론이 건강하게 제 기능을 하려면 언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업에 보람과 만족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저널리스트가 만족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개 기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혼자서 그것(혐오표
[신동규 기자 eastern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