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환경미화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모씨가 평소 업무와 무관한 영어 시험을 본 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주장이 지난 7일 제기됐습니다.
고인의 동료들은, 고인이 서울대 직원의 '갑질'에 시달렸다고 이야기합니다.
동료들은 최근 새로 부임한 관리직원이 학내 환경미화원들에게 ‘관악 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거나, 기숙사의 첫 개관 시기를 맞히라고 하는 등 업무와 거리가 먼 내용의 시험을 보게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후 시험지를 채점해 점수를 매겨 나눠주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가 몇 점을 맞았다고 공개했으며 일부 환경미화원은 이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끼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일각에선 업무와 관계없는 필기시험을 치게 하는 의도가 무엇이냐며 충분히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는데요. 과연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을지 팩트체크 해 봤습니다.
형법 제311조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법률 전문가에 따르면 모욕죄는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특정성(피해자 특정), 모욕성(추상적 가치판단이나 경멸적인 감정의 표현)의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됐을 때 성립됩니다.
유승 종합법률사무소 신동희 변호사는 "모욕은 평가의 영역이기 때문에 단순한 석차 게시는 어떠한 평가(무식하다 등)도 동반되지 않는 것이기에 모욕죄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며 "시험을 보게 한 것 자체의 행위만으로는 모욕죄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법률사무소 송보 강지웅 변호사도 "업무와 관계없는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당사자가 모욕감을 느꼈다고 해도 경멸적 감정의 표현과 의견평가의 표시가 없었다면 모욕죄가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취재결과를 종합해보면 "환경미화원 대상 '시험 갑질', 모욕죄로 처벌가능하다"라는 명제는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는 볼 수 있을까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는데요.
법무법인 안심 강문혁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 욕설과 폭언과 같이 명백한 괴롭힘이 아닌 그저 시험을 실시하고 점수를 공개했다는 행위 자체만을 가지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환경미화원이 용역업체가 아닌 서울대 소속 근로자가 맞다면 시험 문제가 업무와 관련된 내용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나름일 것"이라며 "동의한 상태에서 치러진 시험이라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보기에 애매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성적을 공개하는 것 자체는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A대학교 교수가 학생들의 성적을 단체 채팅방에 공지한 것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라는 요지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후 A대학교 총장에게 향후 유사한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바 있는데요.
인권위는 개인의 성적이나 점수가 다른 사람에게 공공연히 알려지면 개인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성적의 열람은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관리되는 개인정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진실 인턴 기자 leejinsil9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