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재훈 씨 “사회에 숙제 주고 간 아들 대견해”
“잘 가라. 고작 그만큼밖에 못 살고…이젠 잘 가라”
경기 평택항 부두에서 300㎏이 넘는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청년노동자 이선호(23) 씨의 장례식이 사고 59일 만에 치러졌습니다.
오늘(19일) ‘고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을 위해 미뤄왔던 이 씨의 장례를 시민장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유족들은 사고 원청회사 ‘동방’의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며 약 2달 동안 장례를 치르지 않고 빈소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16일 재발방지대책을 포함한 합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이날 추모사를 통해 조문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 씨는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도 있었지만, 두 달 동안 이름도 알지 못하던 분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시고 약해져 가는 제 마음을 추슬러주셨다”며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이는 비록 23년 살다 갔지만, 이 사회와 세상에 많은 숙제를 주고 떠난 것 같아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습니다. 함께 헌화하던 이 씨의 어머니는 기력이 없는 듯 연신 눈물만 훔쳤습니다.
두 달 내내 빈소를 지킨 이 씨의 친구들도 추모사를 통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한 친구는 “추운 것을 정말 싫어하던 선호를 차가운 안치실에서 오래 머물게 해 정말 미안하다”며 “선호가 행복하고 좋은 꿈만 안고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고 이 땅에 더는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위험의 외주화’ 논란을 초래한 한 김용균 씨, 구의역 참사 등을 언급하며 아직도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은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구의역 김군, 김용균 씨, 김한빛 씨 이후 각 분야 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선호 님을 잃고 나서야 우리는 항만의 노동자들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더 빨리 깨닫고 관심을 가졌다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있었을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숨진 355명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겠다. 더는 희생되는 노동자가 없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이날 장례식에는 정의당 여영국 대표와 심상정, 배진교, 강은미, 장혜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참여했습니다.
여 대표는 “300㎏ 쇳덩이는 23살 청춘을 덮치고 삶의 희망을 산산조각내며 제2, 제3의 김용균만은 막아보자던 우리 심정을 산산조각냈다”며 “사람 목숨 앗아가도 기업주는 멀쩡하고 함께 일하던 노동자만 처벌받는 세상의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 씨는 지난 4월 22일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아버지의 일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 씨는 평택항 내 천장 없이 앞·뒷면만 고정한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고정용 나무를
현행법상 일정 규모의 컨테이너 작업 시 사전 계획과 안전 조처 방안 등을 마련하고, 지게차 동원 시 신호수를 배치해야 하지만 당시 이 씨는 사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 jzer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