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교'에서 늙은 시인 이적요는 열일곱 소녀 은교를 만나고 '내 세상은 무너졌다.'며 이렇게 한탄하듯 말합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얼마 전 정세균 전 총리가 무심코 '장유유서'라는 말을 했다가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한국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나이를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승진 급여도 '밥그릇 순'이고, 하물며 명예퇴직 대상자를 가릴 때도 나이순으로 해야 뒷말이 적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에서 국회의원 경험도 없는 불과 36세의 청년이 대표로 등극했습니다. '이준석은 불안할지 몰라도 그가 가져올 변화는 기대한다.'라고 할 정도로 기득권을 감싸온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인 박용진 의원이 여권 대권주자 선호도 3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정치권에 불기 시작한 세대교체 바람은 이미 돌풍을 넘어 태풍으로 바뀔 기세입니다.
민심이 경륜 있는 그들을 거부한 건 그들의 경륜 때문이 아닙니다. 새 바람을 택한 것도 단지 젊어서가 아닙니다. 왜 민심이 자꾸 젊은 돌풍으로 눈을 돌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과거 정치권의 구태를 반복한다면, 진영논리로만 갈리고, 의리냐 배신이냐 이런 거로만 대립한다면, 새 돌풍도 민심에 똑같은 거절을 받게 될 겁니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니 새 시대 사람이 옛사람을 바꾸네.'
먼저 떠나는 앞 물은 뒷물을 비난하지 말고, 뒷물은 앞 물을 무시하지 말고, 거침없이 달려가 다 같이 바닷물로 만나 뒤섞여야 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뒷물과 앞물의 조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