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히틀러를 숭배하는 영국 역사학자가 유대인 집단학살을 다룬 책을 낸 미국 여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벌어진 법정 공방을 담았습니다. 피고인은 가까스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규명해 내지요.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증명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진실이 드러날지라도 그 진실을 인정받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줍니다.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은 어느 해보다 분위기가 좋은 듯하죠. 대권 주자들이 줄지어 광주를 찾고, 5·18유족회가 주관하는 추모제엔 처음으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의원 2명이 참석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걱정도 듭니다. 여야 모두 마음으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 혹시 선거를 겨냥한 미봉책으로 이용하는 건 아닐까….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기억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라며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답해 그들의 원통함을 달래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5·18 묘지를 찾은 전·현직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5월 영령의 희생정신을 계승한다.'는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이런 방명록의 글귀는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지켜졌을까요? 아무리 5·18 왜곡처벌법을 만들고, 진상조사를 되풀이하고, 유공자 수를 늘리고, 유족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정치적 게임이나 흥정의 대상이 되면 안 됩니다.
진짜 5·18의 시대정신을 되새긴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뭘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미얀마 사태나, 중국 신장 위구르 문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내일 5·18 행사에는 어떤 방명록들이 씌어 질까 궁금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광주의 방명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