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도 국민이다"…서울역 노숙인들 이름 외우는 경찰관

"선생님, 길 한복판에서 이러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지난 9일 오후 서울역광장 한복판에서 팔굽혀펴기하던 노숙인에게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노숙인 전담 경찰관 38살 박아론 경사가 다가갔습니다. 노숙인은 박 경사가 낯설지 않은 듯 친근하게 아는 체를 하더니 이내 자리를 옮겼습니다.

박 경사의 업무는 서울역 광장 내 노숙인 관리입니다. 서로 싸우거나 몸이 불편한 노숙인은 없는지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으로 안내합니다. 박 경사는 오늘(13일) "도와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노숙인을 괴롭히는 등 잘못을 하면 형사과에도 보낸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서울역 노숙인 500여명 중 상주하는 140명 정도는 얼굴과 이름, 특징 등을 줄줄이 뀁니다. 수년 전엔 노트에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적어놓기도 했으나 개인정보보호 의식이 강해진 요즘엔 그럴 수 없어 무조건 외웁니다.

박 경사는 "밤새 누가 누구와 싸웠다, 누구와 사귄다 등 소문도 귀에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박 경사가 이곳으로 발령된 것은 지난해 5월입니다. 처음 노숙인들에게 다가갔을 때는 멱살을 잡히기도 했습니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광장을 청소하며 한 마디씩 건네는 일이 반복되자 그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관이 왜 쓰레기를 줍냐"며 다가오더니 "상담을 해달라"며 먼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잘 데가 없다", "너무 덥다", "누가 쫓아오는 것 같다"는 고민도 박 경사에게는 털어놓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검사를 독려하고, 확진 판정 후 사라진 노숙인을 찾는 일까지 맡았습니다.

노숙인 감염이 확산하던 지난 1월에는 하루 10시간씩 방호복을 입고 숙대입구에서 만리재로, 충정로까지 뛰어다니며 소재불명 노숙인을 찾아내느라 체중이 11㎏나 빠지기도 했습니다. 남대문서가 발견한 확진 판정 노숙인 100여명 가운데 절반은 박 경사가 찾았습니다.


'노숙인 찾는 일을 왜 하느냐'는 주변 반응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 경사 생각은 확고합니다.

"노숙인이 코로나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방관하면 내 업무를 안 하는 것이죠. 경찰의 임무가 국민의 신체와 생명 보호인데 노숙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호해야 합니다."

2011년 만들어진 서울역파출소 노숙인 전담 경찰관은 박 경사가 세 번째입니다. 지난해 2월까지 근무한 한진국 경위가 떠나고 약 4개월간 공석이었습니다.

박 경사는 나이와 계급 모두 자격이 되지 않았지만 "한번 해보겠다"며 나섰습니다. 윗선에선 '노숙인이 드센데 할 수 있을까'라며 우려스러운 눈길을 보냈으나 그는 노숙인복지법과 정신건강복지법까지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지난해 7월 만난 알코올 중독 50대 노숙인은 박 경사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사회에 복귀했다고 합니다. 박 경사는 그 노숙인이 첫 월급을 타 파출소에 찾아온 날을 가장 보람 있는 순간으로 꼽았습니다.

"노숙인도 국민이고 시민입니다.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은데 몰라서 못 받을 뿐이지요. 제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다리는 놓아줄 수 있습니다. 연결만 해주면 그들의 삶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