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강간상황극 실행범 징역 5년 확정…"몰랐단 주장 납득 못 해"

피해 여성이 존재함에도 1심에서 성폭행 실행범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강간 상황극' 관련 피고인이 모두 유죄로 결론 났습니다.

오늘(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오 모(39) 씨 강간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강간 상황극이라며 오 씨를 유도해 애먼 여성을 성폭행하게 한 이 모(29) 씨 역시 징역 9년형이 확정됐습니다.

이 씨는 지난 2019년 8월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의 프로필을 '35세 여성'으로 꾸민 뒤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 씨가 이 글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자 이 씨는 집 근처 원룸 주소를 알려주며 자신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속였고, 오 씨는 그날 밤 그곳에서 만난 처음 보는 여성을 성폭행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임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오 씨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사건은 공분을 사게 됐습니다.

지난해 6월 4일 1심 재판부는 "오 씨가 이 씨 거짓말에 속아 일종의 합의로 상황극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오씨는) 자신의 행위가 강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거나, 알고도 용인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범 역할을 하며 성관계한다고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즉각 반발해 항소한 뒤 법리 검토를 거쳐 오씨에게 강간 혐의를 따로 추가했습니다.

딱 6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4일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오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8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도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이라 볼 수 있는 강간 상황극 협의 과정에서 시작과 종료는 어떻게 할지, 피임기구는 사용할지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소를 알려줄 정도로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번 상황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 과정에 피해자 반응 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을 거라 보이는데도 상황극이라고만 믿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씨의 경우에는 1심에서 오씨를 도구로 이용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논리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돼 징역 13년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오씨에게 주거침입강간을 실행하게 했다고 봐서 주거침입강간 미수죄(간접정범)로 처벌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항소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변론 없이 피고인들과 검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 백길종 디지털뉴스부 기자 / 100road@mbn.co.kr ]